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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코리아]14.<끝> 전자교환기…옛 공산권 황금시장을 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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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2백50㎞ 떨어진 랴잔시. 랴잔주 (州) 의 주도 (州都) 인 인구 55만명의 이곳 랴잔시에 설치된 전화 회선은 10만회선. 대부분 구형 기계식 교환기에 연결돼 있지만 이가운데 1만회선은 최신 디지탈 교환기를 통해 운용된다.

랴잔시가 통신시설 현대화를 위해 작년 8월 랴잔시 북쪽 모스코브스키 지역 전화국 (전화국 이름이 따로 없어 ATS34/55로 불리지만 별 뜻은 없다)에 설치한 삼성전자의 디지탈 교환기 TDX - 1B가 그것이다.

랴잔시에 있는 16개의 크고작은 전화국 가운데 하나인 이곳에는 작년에 설치한 디지탈 교환기에 물려있는 1만회선과 원래부터 쓰던 기계식 교환기용 1만회선이 함께 있다.

전화국 2층에 설치된 디지탈 교환기는 종전의 기계식 교환기에 비해 성능은 크게 개선됐으면서도 덩치는 5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전화국의 예브게니 비스트로프 (47) 부국장은 "디지탈 교환기를 통해 전화가 연결될 경우 잡음과 혼선이 줄어드는등 통화 상태가 한결 낫다" 고 말한다.

이때문에 주요 건물에 설치된 사설교환기 가입자들이 "디지탈 회선으로 옮겨달라" 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다른 전화국에서는 신청한뒤 1주일 이상 걸려야 전화가 개통되지만, 이곳 전화국에서는 당일에 개통돼 인기다.

이곳에 설치된 삼성전자의 교환기는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인 독일의 지멘스나 스웨덴의 에릭슨등과 치열한 경쟁 끝에 따낸 것이다.

랴잔시의 경우 삼성전자가 통신 현대화사업 실시 이후 처음으로 디지털 교환기를 납품했지만, 주 (州) 전체적으로는 지멘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랴잔주의 통신사업을 총괄하는 랴잔일렉트로스비아즈의 블라디미르 셰브네프 (57) 사장은 "앞으로도 매년 1만5천~2만회선 규모의 교환기를 추가로 발주할 계획" 이라며 "가격만 맞으면 삼성 제품을 사겠다" 고 말했다.

랴잔시 서쪽, 모스크바에서는 남쪽으로 2백30㎞에 위치한 뚤라시에도 올7월 삼성전자의 디지탈 교환기가 설치됐다.

이에앞서 95년에는 러시아 최남단 지역인 카스피해 연안 다게스탄에 2만회선 규모의 교환기를 설치했다.

91년 레닌그라드에 1천회선 규모의 교환기를 기증한뒤 본격화된 삼성전자의 러시아 교환기 사업은 이미 개통된 곳과 추진중인 곳을 합쳐 50여곳, 금액으로는 3억달러 규모다.

지금까지 개통된 것만 20만회선이 넘는다.

주로 모스크바 인근 지방도시이고 규모도 크지 않지만, 삼성전자측은 "통신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토대는 마련된 셈" 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이동통신 분야에서도 일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삼성 CIS주재 안재학 (安在學) 사장은 "올들어 러시아 정부가 삼성과 일본의 NEC등 러시아에 투자실적이 있는 7개사에 대해서만 통신설비 납품자격을 주도록 제도를 바꿨다" 며 "앞으로 러시아내 통신사업을 전략적으로 키워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현지 교환기 영업을 담당하는 김덕원 (金德源) 부장은 "러시아의 전화 회선수가 2천8백만회선으로 적은데다 대부분 낡은 기계식이어서 교환기 시장의 잠재력은 엄청나게 크다" 고 말한다.

한편 동남아 베트남의 교환기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우리나라의 LG정보통신. 올4월말 현재 베트남 교환기 시장의 29%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프랑스의 알카텔 (21%) 이나 지멘스 (17%) 에릭슨 (10%) 등 쟁쟁한 업체들보다 한수 위다.

베트남 61개성 (省)가운데 51개성에 크고 작은 LG교환기가 들어가 있다.

수도 호치민과 하노이등 대도시의 웬만한 전화국에서는 도시형 대형교환기인 스타렉스를 쉽사리 찾아볼수 있다.

LG의 현지합작법인 VKX의 노태익 (盧泰益) 법인장은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가 풀리기 이전인 89년부터 시장을 꾸준히 공략한 덕에 내로라하는 통신업체들을 제치고 현지시장 1위에 올라섰다" 고 말한다.

LG는 작년에는 현지법인에서 만든 스타렉스 교환기 1대를 필리핀에 수출하기도 했다.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박린성 (省) 의 성도 (省都) 인 박린시 전화국의 뉴엔 딘 수완 (38) 전자실장은 "LG교환기는 용량이 커 신규 전화가입자를 입력하기 쉽고 자가진단기능이 있어 관리가 쉽다" 고 말한다.

하노이에 사는 렌 빅 녹 (24.여) 씨는 "국제전화를 자주 하는데 LG교환기가 설치된 이후 혼선.잡음 때문에 불편을 겪은 적이 없다" 고 한다.

또 대우통신은 지난5월 우크라이나에 연간 30만회선 생산규모의 교환기 합작공장을 현지에 완공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신망 확충계획에 맞춰 현지 교환기 시장을 선점하고 카자흐스탄등 인접 국가에도 교환기를 수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LG.대우등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의 해외시장 진출이 이처럼 활기를 띠는 것은 러시아.베트남등 옛 공산권 국가들의 통신설비 현대화작업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결과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교환기 사업은 시장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품목. 한번 기종을 정하면 호환성을 고려해 다음 증설 때도 같은 기종을 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은 이때문에 통신설비가 웬만큼 갖춰진 곳보다는 90년대들어 통신사업이 활발해진 이들 국가들을 집중 공략해왔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의 지속적인 시장확대를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도 적지않다.

우선 선진 업체들보다 떨어지는 기술력을 높이는 일이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며 수익성이 낮아진 것도 문제다.

러시아의 경우 90년대초 회선당 3백~3백50달러까지 받았지만 요즘은 회선당 2백달러 받기도 빠듯하다.

세계적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EDCF (대외경제협력기금) 적용 범위를 늘리는등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특별취재팀 : 유규하 차장 (팀장.경제2부) , 박방주·유지상·신성식·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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