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겨냥하는 한나라, 천신일 조준하는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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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지도부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右)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전인 남북한 축구경기를 참관했다. 여야 대표들이 북한 선수들의 그라운드 입장을 기다리며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홍준표 원내대표는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500만 달러 송금건’과 관련, “노 전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증거가 나오면 검찰이 불러서 조사해야 한다. 증거가 있으면 처벌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홍 원내대표는 “떳떳한 돈이면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거래가 됐어야지, 무엇을 숨기려고 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홍콩의 비밀계좌에서 빼내 또 다른 해외 계좌로 이체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하고 세월이 달라져 정치 보복 운운할 여지는 없어졌다”고 덧붙였다. 당 주류 측인 공성진 최고위원도 라디오에 출연해 “노 전 대통령은 돈 문제만큼은 깨끗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며 “전직 대통령이라고 수사의 성역이 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안경률 사무총장은 “검찰이 국가적 정의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소신을 가지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반면 친박근혜계는 불편한 심기가 역력하다. 김무성·허태열·김학송 의원 등 부산·경남(PK)의 친박계 중진들이 속속 언론에 ‘수사 대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모종의 시나리오가 깔려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친박계 핵심인 김무성 의원은 이날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나와 “4선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후원회를 연 적이 없는데도 검찰이 후원금 관련 자료를 선관위에 요청한 것은 저에 대한 상처 입히기”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의혹이 있으면 밝히는 곳이 검찰인데 지금은 검찰이 거꾸로 의혹을 생산하고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며 “검찰은 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공개 수사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함께 나온 허태열 최고위원도 “수사 초기에 박연차씨가 저에게 후원금을 줬다고 진술을 해서 이미 검찰이 조사를 벌였으며 특이한 문제는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안다”며 “(국회의원) 선거에 붙은 이래 박씨를 비롯한 노 전 대통령 쪽 사람들은 만난 일도, 통화한 일도 없다”고 해명했다.

한 친박계 재선 의원은 “검찰이 흘리는 내용을 보면 문제없는 것도 마치 불법인 것처럼 부풀리고 있어 의도적인 ‘친박 죽이기’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PK지역도 친이계가 상당수인데 유독 친박계 이름만 자꾸 부각되는 점이 이상하다는 불만도 들린다.

친이계는 이 같은 친박계의 시각에 펄쩍 뛴다. 공 최고위원은 “(친박계 의원들이 많이 거론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박연차씨가 부산·경남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그쪽 의원들이 수사 대상에 오르내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당내에선 경주 재선거와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으로 친이-친박 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이번 검찰 수사가 당내 균열을 심화시키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는 기자들이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대한 견해를 묻자 “수사 중이잖아요”라며 언급을 아꼈다.

◆민주당 “리스트 몸통은 천신일”=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회의에서 “박연차 사건은 지난해부터 진행된 휴켐스 헐값 인수와, 이와 관련한 세무조사를 무마하고자 한 로비에서 출발했다”며 “박연차 리스트의 핵심 몸통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그 배후를 밝히라는 것이 국민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송 최고위원은 “박연차씨는 ‘이명박의 남자’로 알려진 천신일 회장과 아주 가까운 관계로 천 회장을 휴켐스 사외이사로 임명했다”며 “사실상 천 회장과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책회의를 한 것도 밝혀졌는데 왜 검찰이 수사를 안 하느냐”고 따졌다. 그는 또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이 대통령에게 뭘 보고하고 뭘 조율했는지 수사가 더디다”며 “국정조사로 이 같은 문제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선 최고위원도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함에도 박연차 구명 로비 의혹이나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3개월 전 그림 상납 의혹 사건으로 물러난 한상률 전 청장은 박연차 세무조사 로비 사건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 보이는데도 도피성 출국을 했다”며 “뒤늦게 수사한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과연 몸통을 잡기 위한 수사인지 깃털을 잡기 위한 수사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보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검찰이 야당 의원들을 소환·구속하고 민주당을 비리 집단으로 호도하는 것은 한나라당 승리를 위해 나팔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도 몰아붙였다.그러나 당내에선 다른 목소리도 나왔다.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그 이후에 특검 도입 등을 검토해야지 지금부터 민주당이 특검을 도입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며 소신을 피력했다.  

김정하·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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