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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의 역설 … 깨끗하게 자라 탈난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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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울 광진구에 사는 회사원 한모(34)씨는 지난달 고열과 구토가 반복돼 며칠간 참다가 병원을 찾았다. 혈액검사 결과 의사는 A형 간염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지난 1월 중순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먹은 음식이나 물에서 감염됐을 확률이 높다는 설명이었다.

20, 30대 A형 간염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 들어 3월 21일까지 A형 간염에 걸린 20, 30대는 132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74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2002년 224명에서 지난해 6384명으로 늘었다. 전체 환자의 80%가량이 20, 30대가 차지한다.

A형 간염은 위생상태가 좋지 않던 1970년 이전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볍게 앓고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면역이 생겼다. 당시는 위생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80년 전후 위생 상태가 개선되기 시작했고 그때 태어난 20, 30대가 지금 와서 많이 걸린다.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어릴 때 감염되는 경우가 많이 사라졌고 면역이 없는 성인기에 탈이 나는 것이다. 깨끗한 위생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90년대에 예방접종이 개발됐고 이 덕분에 10대들은 잘 걸리지 않는다.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어릴 때 감염되면 증상이 거의 없지만 성인은 고열·복통·황달 등이 생긴다. 10대 환자가 적은 이유는 이런 특성 탓도 있다.

질병관리본부 전염병관리팀 권준욱 팀장은 “선진국도 경제가 발전하면서 A형 간염 환자가 급증한 뒤 다시 줄어드는 양상을 보인다”며 “우리나라도 그런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A형 간염은 주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먹으면 걸린다. 질병관리본부가 2008년 A형 간염 환자 364명을 조사한 결과 35%는 어패류 등 날음식을 먹은 뒤 걸렸다. 바이러스가 하천이나 바다로 흘러가 어패류에 옮기고 익히지 않은 어패류를 통해 다시 사람이 감염된다.

A형 간염은 사람끼리 전염된다. 환자의 손을 잡거나 물건을 통해 바이러스가 옮긴다. 현재 A형 간염엔 대책이 별로 없다. 정부에서 환자 발생만 체크하는 지정전염병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이 병이 급속히 확산되자 전염병 예방법을 바꿔 1군 전염병으로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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