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2> 국보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2면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탄 지 1년여가 흘렀습니다. 숭례문은 상처를 입었지만, 악재를 계기로 국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더 높아진 듯합니다. 뉴스클립을 통해 국보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2회에 걸쳐 총 네 개 면을 할애해 소개합니다. 먼저 문화재청이 보유한 국보 총목록을 분석했습니다. 소유자·관리자·지역 등 목록 분석만으로도 흥미로운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경희 기자

국보를 보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 국보의 절반(156종)이 서울에 있다. 310호까지 지정된 국보는 해제된 1종을 제외하면 309종이 있다. 그중 소장처가 두 곳으로 나뉜 게 4종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체 국보 다섯 중 하나(59종)를 관리하고 있다. 3대 사립박물관으로 통하는 리움미술관(34종)·간송미술관(12종)·호림박물관(8종)에도 상당수의 국보가 있다. 경북에 서울 다음으로 많은 53종(17%)이 소장돼 있다. 그중 경주에만 28종이 몰려 있다. 충남(9%)·전남(6%)이 뒤를 이었다. 제주도엔 국보가 하나도 없었고, 인천의 국보는 가천박물관에서 관리 중인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 제 53’(276호)이 유일했다. 국보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 1~10위를 소개한다.

1위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 창고’

국립중앙박물관은 금동미륵보살반가상(78호)을 비롯해 경천사십층석탑(86호), 이제현 초상(110호), 청자상감모란국화문과형병(114호) 등 탑과 불상·도자기·토기 등 다양한 국보급 유물 59종을 관리한다. 그중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유권자인 유물은 44종이다. 국유 재산 중 이전이 불가능한 건축물을 빼고는 상당수의 유물이 이곳에 있다. 불국사가 소유권을 가진 ‘불국사 삼층석탑 내 발견 유물 일괄’(126호) 등 15종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한다.

2위 리움미술관엔 명품 수두룩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으로 국보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리움미술관에선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216호)와 금강전도(217호)가 먼저 눈에 띈다. 소유권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있다. 이 전 회장이 갖고 있는 국보는 모두 24종. 개인 소장가 중에는 최다 보유자다. 청자·백자·불상은 물론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241호), 전충남출토청동방울일괄(255호) 등 목록이 다채롭다. 금동관음보살입상(128호) 등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에 둔 2점을 제외하고 이 전 회장의 소장품은 모두 리움미술관에서 관리한다.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한 국보 12점 중 11점도 리움미술관에 있다.

3, 4위 왕릉이 살린 국립 공주·경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14종 중 12종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왕과 왕비가 쓰던 금·은 장신구, 청동거울, 관에 시신을 안치할 때 목과 발을 받치는 도구인 두침(164호)과 족좌(165호) 등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국보 13점 중엔 천마총금관(188호)을 비롯한 천마총 출토 유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등 신라시대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비중이 높다. 출토 유물이 아닌 것으론 성덕대왕신종(29호, 일명 에밀레종)이 유명하다.

5위 그림 보려면 간송미술관

삼성가 다음으로 국보를 많이 소유한 개인 소장자는 전성우 화백이다. 전 화백은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의 설립자 고 간송 전형필 선생의 장남이다. 훈민정음(70호), 동국정운(71호) 등 중요 고문서와 혜원 신윤복(1758∼?)이 그린 ‘단오풍정’ ‘월하정인’(사진) 등 연작 풍속화 30여 점이 담긴 화첩 혜원풍속도(135호)가 간송미술관에 있다. 전 화백의 소장품 12점 청자상감운학문매병(68호) 등 청자가 4점에 달해 그 비중이 가장 크다.

6위 ‘탑·탑·탑’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을 제외하고도 경주시에는 국보가 9점이 있다. 첨성대(31호), 신라태종무열왕릉비(25호)와 단석산신선사마애불상군(199호)을 제외하면 모두 탑이다. 감은사지삼층석탑(112호)과 경주구황리삼층석탑(37호) 등 국보급 탑만 6점이다.

7위 백자가 아름다운 호림박물관

호림박물관은 호림 윤장섭 선생이 출연한 기금과 유물을 바탕으로 1982년 개관했다. 도자기와 토기 등 문화재 1만여 점 중 국보가 8점, 보물이 46점이다. 도자기 전문 박물관답게 청화백자매죽문호(222호·사진) 등 백자 2점과 분청사기 1점이 국보로 지정됐다. 화엄종 근본 경전인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266호) 등 고려 초기 대장경 4종도 소장하고 있다. 소유자는 모두 성보문화재단으로 돼 있다.

8, 9, 10위 문서의 보고 규장각, 국보급 사찰 불국사·부석사

서울대 규장각에는 조선왕조실록(151호·사진)과 승정원일기(303호), 삼국유사(306호) 등 국보급 고문서만 7종이 모여 있다. 모두 연구자들에게 긴요한 사료들이다. 불국사에는 국보가 총 6점이 있다. 다보탑(20호)과 삼층석탑(21호) 등 탑 2점, 교량 2점, 불상 2점이 일찌감치 국보로 지정됐다. 부석사는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18호)은 물론, 그 앞에 있는 무량수전앞석등(17호)도 국보다. 부석사의 국보는 모두 5점으로 불국사보다 1점 뒤진다.

국보 절반 서울에 … 인천엔 딱 하나


사고팔 수 있지만 해외 판매는 안 돼

Q&A

몇 호까지 있나

국보는 310호까지 지정됐다. 숭례문(1호)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백자대호(310호)까지다. 310호까지의 국보 중 국보에서 지정 해제된 제274호 귀함별황자총통을 제외하면 총 309종의 국보가 있다. 참고로 보물은 1613호까지 있다.

문화재 1개당 번호가 하나씩 붙나

숭례문처럼 단일 건물일 경우에는 그렇다. 여러 권이 묶인 책이나 목판본 등은 수량이 얼마가 되든 한 세트에 한 개의 번호가 붙는다. 불국사 삼층석탑 내 발견 유물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축과 금동제 사리외함 1개, 동경 2개, 유향 3봉과 유리구슬 등 총 28종이 한꺼번에 국보 126호로 지정됐다. 다만 문화재청에서는 이를 관리하기 위해 126호-1~28까지 관리번호를 붙여 구분한다. 해인사고려판각(206호)도 묘법연화경(206호-1)부터 십문화쟁론(206호-28)까지 모두 28개의 관리번호로 식별한다.

같은 판본이라도 소장처가 다를 경우엔 ‘가지번호’를 붙여 구분한다. 개인이 소장한 삼국유사를 306호로, 서울대규장각에서 소장한 삼국유사는 306-2호로 표시하는 식이다.

왜 숭례문이 1호가 됐나

국보 번호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지정된 순서대로 번호를 붙인다. 우리 문화재를 국보로 지정하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다. 이에 앞서 일제가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발표하고 보물을 지정하기 시작했으나 국보 호칭은 일본 문화재에만 적용했다. 국권을 잃은 조선은 국가가 아니어서 국보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당시 지정된 보물은 340건, 고적 101건, 천연기념물 146건이었다. 그중 남대문(일제가 숭례문 대신 붙인 이름)이 보물 1호였다.

광복 후인 55년 정부는 일제가 지정한 보물 중 북한에 있는 것을 빼고 모두 국보로 승격시켰다. 이듬해 일부 문화재의 이름을 바꾸고 등급을 재조정했다. 이때 국보 1호인 남대문은 숭례문으로 본래 이름을 회복했다. 이런 이유로 일제가 1호로 매긴 숭례문이 아니라 가장 가치 있는 문화재를 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국보 1호 재지정 논란’이 96년과 2005년 등 몇 차례 있었다. 96년에는 국민과 전문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까지 벌인 끝에 “당분간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제일 가치 있는 국보는 뭔가

답하기 좀 어렵다. 워낙 의견이 분분하다. 연구자들의 판단과 국민의 정서, 문화재청에서 관리를 맡는 담당자들이 느끼는 것과 예술적인 가치 판단 기준 등이 달라서다. 국보 1호 재지정 논란 당시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훈민정음(70호)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78호), 석굴암(24호)이었다. 공교롭게도 숭례문은 화마를 입은 뒤 되레 ‘국민정서법’상 진정한 국보 1호로 자리 잡은 듯하다.

사고팔 수 있나

국보도 소유물, 즉 재산으로 인정된다. 국유인 경우에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기본적으로 재산이기에 매매가 가능하다. 매매로 인해 소유자가 바뀌거나 소재지에 변동이 있으면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가 부가된다. 단, 해외 판매는 불가능하다. 해외에서 전시할 경우만 문화재위원회의 조사·심의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반출이 승인된다. 국립박물관·지자체 등이 소장한 국보까지 포함하면 전체 국보의 절반가량이 국유 재산이다. 개인이나 재단·대학이 소유한 국보는 전체 국보의 약 30%를 차지한다. 사찰에 소유권이 있는 국보는 60여 종으로 전체 국보의 약 20%에 해당한다.

얼마에 매매되나

국보의 매매는 흔치 않은 일이라 그 시가를 알기는 어렵다. 국보도 국보 나름이라 그 값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청자라도 크기나 완성도, 용도와 희귀성, 예술성에 따라 수백억원부터 몇 만원까지 다르듯 말이다. 보물 903호인 고려청자상감매죽조무늬매병은 2004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10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유사한 작품이라면 국보가 더 높은 값으로 불리리라 짐작할 뿐이다. 최근 국립제주박물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93호)와 보물 2점을 포함한 백자 10점을 임대 전시하면서 가입한 유물수송 보험가액만 100억원이었다. 이렇게 보험가액으로 대략의 가치를 추정할 수는 있으나 그 역시 일종의 위험수당일 뿐 국보의 정가라 보긴 어렵다. 건축문화재의 경우 그 위험 부담 때문에 보험사에서 아예 가입을 받아주지 않기도 한다. 산정된 보험가도 터무니없이 낮다. 가령 경복궁 경회루(224호)의 보험가액은 30억원을 상회하는 수준에 그친다. 얼마 전 그 내용이 공개돼 큰 화제가 된 정조어찰의 경우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음에도 소장자가 30억원을 불렀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국보의 이름이 너무 어렵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

국보 이름은 모두 한자로 돼 있어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한글로 풀어 쓸 경우 그 이름이 너무 길어 복잡해지는 문제가 있다. 가령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을 풀면 ‘상감 기법으로 구름과 학의 무늬를 새긴, 아가리는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푸른 빛깔의 자기 병’이 된다. 게다가 상감 기법마저 한글로 설명하려 들면 끝이 없다.

한자로 된 문화재의 이름도 아직 완전히 통일되진 않아 들쑥날쑥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일관성은 있다. 가령 불상은 사찰명-재료명-존명-자세 순으로 이름을 짓는다. 국보 제26호 ‘불국사금동비로자좌상’을 뜯어 보자. 불국사(사찰명)-금동(재료명)-비로자(존명)-좌상(자세)의 순이다. 풀면 ‘불국사에 있는 금동으로 된 비로자부처의 앉은 상’이다.

청자나 분청사기도 읽는 방법이 있다. 주로 청자냐 백자냐 등 자기의 구분을 맨 앞에 쓴 뒤 기법-문양-형태의 순으로 이름을 짓는다. 앞서 예를 든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청자-상감(기법)-운학문(문양)-매병(형태)의 순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기법과 자기의 구분이 뒤바뀐 경우도 있다. 국보 263호 청화백자산수화조문대호(靑華白磁山水花鳥文大壺)는 청화(기법)-백자-산수화조문(문양)-대호(형태)의 순이다. 이를 풀이하면 푸른 안료(청화)로 산과 물과 꽃과 새의 그림(산수화조문)을 그린 커다란 항아리형 백자가 된다. 뚜껑이 있는 경우 청자기린유개향로(65호)처럼 ‘유개(有蓋)’를 넣어 별도로 구분한다. 교령(敎令)은 왕이 내린 벼슬아치 임명장을 뜻한다.

뉴스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중앙일보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