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가족 모두 잃은 중3 장성민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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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끔찍한 현실을 애써 잊으려는 듯.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 7층 병동. 장성민(15)군은 몸이 거동조차 힘든데도 침상에 앉아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티없는 맑은 사춘기 소년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에게 말을 붙이려던 기자의 입술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사들고 간 식혜상자를 내려 놓고 옆에서 장군을 간호하던 이모 우영희(50)씨와 문 밖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착하고 순진한 장군에게 무슨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날 애 엄마가 지방에 가는 내게 '잘 갔다 온나…'라고 한 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우씨의 눈가는 금새 붉어졌다.

울먹이면서, 우씨는 말을 이어갔다-. 지난달 30일 새벽 2시. 장군 가족이 평온하게 잠들어 있던 연립주택 2층에 화마(火魔)가 덮쳤다. 마루에 놓여 있던 스탠드가 과열되면서 불이 났다고 했다.

'쾅'하는 소리에 놀란 장군 아버지(47)가 뛰쳐 나가보니 집안이 불길에 휩싸였다. 매캐한 연기를 헤치고 아들들이 자는 큰 방을 더듬어 갔고, 아내도 찾아 나섰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불길엔 속수무책이었다.

막내 아들 장군은 가까스로 구했다. 그러나 자신은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집 밖으로 나가려던 큰 아들(19)은 끝내 현관 앞에서 까맣게 탄 채 숨졌다. 장군 어머니(46)도 질식해 숨을 거뒀다. 화재가 난 지 2주 뒤. 결국 사경을 헤메던 장군 아버지마저 갑자기 폐렴기 와 숨지고 말았다.

그렇게 장군만 홀로 남았다.

"그렇게 화목할 수가 없었는데…." 우씨는 한달동안 일어난 일이 아직도 현실 같지 않다고 했다.

장군 부친은 생명보험 회사를 다니다 구조조정으로 그만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신앙이 두터웠던 그는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목사가 됐다.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남부럽지 않은 두 아들과 사랑스러운 아내가 그에겐 힘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가 피아노 교습으로 생활비를 보탰다. 큰 아들은 20년간 가꿔온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변을 당했다. 그는 올해 연세대 치과대학에 입학해 친구들과 동네 주민들의 부러움을 한껏 샀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시샘이라도 냈던 걸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우씨의 손이 다시 붉어진 눈가로 올라갔다.

장군에겐 당초 어머니와 형이 숨졌다는 사실을 숨겼다. 중학교 3학년 소년에겐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장군은 아버지가 숨질 때까지만 해도 다른 가족들이 중환자실 등에서 치료를 받는 줄 알았다.

결국 납골당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장군은 쓰러졌다고 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다리가 그를 버틸 수 없게 했다. 그리곤 "나만 살아서 미안하다"고 울부짖었다. 우씨는 "어젠 '나도 차라리 따라서 갔으면 좋겠다'고 해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말했다. 혼자 살아서 미안하고, 그래서 더 힘들어 한다는 것이었다.

장군은 이제 우씨가 키울 작정이다. 형편이 어렵지만 장군네 집과 10m 거리에서 마주 보고 살았기에 자식이나 다름없다. 다른 친척들도 살림이 어려워 맡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제 장군에게 남은 건 새까맣게 탄 집과 가재도구 뿐이다. "성민이 아빠가 보험회사에 다녔었지만 생활이 어려워서였는지 보험 하나 들어놓은게 없더군요…."우씨는 "남은건 4천5백만원에 이르는 대출금 뿐"이라고 말했다. 집이라도 팔려고 내 놓았지만 화마가 지나간 집이라고 팔리지도 않았다.

우씨는 장군 가족의 사정이 하도 딱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간절한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 서민의 고통과 시련의 아픔을 잘 알기에 사랑과 관심으로 이 쓰러진 가정에 큰 힘이 되어 달라고-.

지금 장군에겐 미술이 꿈이고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소년은 장래 희망도 '애니메이션'전문가란다. 학교에선 그림으로 상도 많이 탔다.

우씨는 "성민이가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예전처럼 다시 활짝 웃을 수 있도록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김준술 기자

편집자주: 아직 충격에 휩싸여 있는 성민군을 위해 사진 촬영은 피했습니다. 성민군에게 따뜻한 관심과 도움.격려를 주실 분들은 우영희(019-529-3013)씨에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후원계좌 : 국민은행 426601-01-203700 (예금주 장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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