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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G20 정상회의의 정치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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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참가국들은 회담을 열기 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논의의 중점을 어디다 두느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미국은 각국의 재정지출을 더 늘려 경기를 부양하자고 주장한 반면, 유럽 국가들은 금융시스템을 정비하고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는 게 먼저라고 맞섰다. 언뜻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처럼 보이지만 실은 주도권 다툼의 성격이 짙다. 이 전초전은 미국이 재정지출 확대 요구를 자진해서 철회함에 따라 싱겁게 끝났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유럽에선 경기가 나빠지면 자동적으로 재정지출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유럽 국가들의 반박에 미국이 맥없이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신흥경제국 간의 갈등도 표면화됐다. 중국이 미국 달러화 대신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로운 기축통화로 삼자는 주장을 펴자 브라질과 러시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동조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미국과 기존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IMF체제에 대한 신흥국들의 불만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이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불필요한 주장”이라며 아예 일축했다. 선진국들은 이런 신흥국들의 도발을 우려 섞인 눈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기축통화 논란은 중국이 G20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물러서면서 일단 수그러들었다.

IMF 등 국제 금융기구 개편에 대해서도 각국의 입장이 엇갈린다. G20 참가국들은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IMF의 재원을 확충한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G20은 글로벌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단 IMF의 재원을 5000억 달러로 늘린다는 데 대체로 합의했다. 그러나 분담액을 두고는 서로가 더 내겠다고 아우성이다. IMF의 운영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계산에서다.

이렇듯 사안마다 의견이 중구난방이다 보니 G20 정상회의가 똑 부러진 대책 대신 어정쩡한 절충안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불가피한 귀결로 보인다. 그래도 이번 회담이 미국발 대공황의 와중에 보호주의의 확산을 막자며 열강들이 모였던 1933년 런던 회담보다는 낫다. 당시에는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한 달 이상을 끌었지만 이번에는 어찌 됐든 하루 만에 끝내기로 했으니 말이다.

이번 회담이 어차피 알맹이가 없다면 내용보다는 형식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 회담의 진행 과정을 보면 확실히 과거와는 판이한 모습이다. 미국의 리더십이 어느덧 무너지고 군웅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암중모색하는 양상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부터 이번 회담을 주도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G20 정상회의를 유럽 순방 일정의 하나로 잡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영국이나 프랑스·독일이 회담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 중국이나 일본 또는 러시아가 회담을 좌우하지도 못한다. 바야흐로 세계경제에 새로운 판이 짜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한국의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로 보는 것 같다. 앞으로 세계질서가 어떻게 재편되는지 눈여겨볼 일이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