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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일본·러시아 정상외교]바뀌는 세계구도(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올 한해 미.중.일.러 4강 정상들의 발걸음은 무척 분주했다.

지난 3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11일 끝난 중.러 정상회담까지 모두 9차례의 정상회동을 기록했다.

그만큼 세계구도가 역동적으로 변하고 4강들에 의한 냉전 후 국제질서 재편 모색도 한층 구체화하고 있다.

4강이 그리는 국제질서 재편의 향방과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집중점검한다.

올해 세계정세 판짜기에서 핵심변수는 무엇보다 중국의 부상을 꼽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안정적이고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과거와 달리 덩치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에따라 중국 스스로도 국제정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려는 자신감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다극화 전략' 이라는 외교정책의 기조에 따라 아시아 각국들과의 분쟁을 말끔히 청산하고 교류를 확대했으며 프랑스와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 를, 러시아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를 맺었다.

국가위상에 걸맞은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특히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중국 비난결의를 추진한 미국을 좌절시킨 것은 중국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음을 과시한 사례였다.

이같은 중국의 부상에 대해 다른 세 나라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우선 미국은 중국을 한편으로는 견제하고 한편으로는 끌어안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은 지난 9월 신안보협력조약을 마무리지음으로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적 위상을 강화했다.

이 조치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내의 '중국경계론' 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클린턴정부는 이른바 '포괄적 개입정책' 으로 명명한 대중국정책에 따라 중국을 민주화함으로써 미국에 협조적인 국가로 끌어가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그 결과 성사된 것이 지난달말과 이달초에 걸쳐 있은 장쩌민 (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방문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관계개선에 주력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옛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대부분 잃다시피 했다.

과거 옛소련의 절대적 영향권에 있던 동유럽국가들중 폴란드.체코.헝가리가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밖의 동유럽국가들도 대부분 러시아로부터의 위협을 피해 NATO에 가입하길 희망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의 배후에는 미국이 버티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 4월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다고 선언한 것은 이처럼 처절하다시피 추락한 국가적 위상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지난 4월 미국과 일본이 신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하기 이틀전 러시아와 중국은 공동선언에서 미국을 겨냥해 '패권 (覇權) 주의' 를 반대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후 러시아와 중국은 꾸준히 경제.안보적 관계를 강화해왔고 최근 정상회담에서는 양국간 오랜 국경분쟁을 말끔히 청산하기까지 했다.

중.러관계가 미.일처럼 동맹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전망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적 움직임이 계속되는 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경제력에 비해 외교.군사적 지위가 미약한 일본은 미국과의 신안보협력관계를 통해 군사대국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을 부쩍 강화했다.

동시에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북방 4개 도서를 돌려받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제시하고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가 일제의 침략만행이 저질러졌던 만주를 방문, 사과했다.

아직은 4강중 정치.안보적 위상이 가장 약한 측면이 드러나는 현실적 처신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올 한해 4강의 움직임은 미.일 신안보협력체제와 중국.러시아간의 전략적 관계강화 사이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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