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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 까먹는 수도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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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입지 선정이 임박한 가운데 천도 논쟁이 일고 있다. 그러나 신행정수도 건설이든 천도든 수도권 과밀문제 완화와 지역균형 발전이란 정부가 내세우는 목적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며 오히려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수도권 과밀 문제는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를 통해 풀어야 한다. 지역 개발은 지역혁신체제 구축, 고용.교육.주택 등을 갖춘 기업도시를 건설 하는 하는 것이 수도 이전보다 더 효과적인 대안이다.

우선 교통혼잡.환경오염 등 이른바 수도권 과밀로 인한 문제는 인구 50만명이 준다고 해서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이런 문제들은 인구 증감과 관계없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중교통 중심 체제 구축과 승용차 사용 억제 등을 통해 교통혼잡을 줄이고, 오염물질 배출 행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제나 오염배출 부과금 등을 통해 환경오염을 완화하는 등 문제별로 직접 해결해야 한다. 수도 이전은 환경오염을 이동시킬 뿐이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는 수도권의 환경오염은 개선되지만 충청권 환경오염이 큰 폭으로 악화해 전국적으로는 오염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으로 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은 충청권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만 전체 국토의 균형발전에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과 재정의 실질적인 분권화를 토대로 각 지역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권화 없이 수도를 옮기면 정부와의 접촉이 필요한 개인과 기업의 거래비용이 증가할 뿐이며 역으로 실질적인 분권화가 이뤄지면 수도 기능이 서울에 있다 하더라도 비수도권 지역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도 이전의 가장 큰 부작용은 국가경쟁력의 저해다. 오늘날 국가경쟁력의 요체는 대도시 경쟁력이다. 런던과 파리.뉴욕 등이 세계도시로서의 지위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중심도시로서 베이징.상하이.도쿄 등과 경쟁할 서울과 수도권 대도시 지역의 브랜드 이미지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은 국가 전체로 봐 득보다 실이 크다. 수도권의 생산성이 다른 지역보다 높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수도권에서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면 나라경제 전체의 성장률이 떨어지고 그 피해가 다른 지역에도 미칠 것이다. 참고로 독일의 천도 경험을 살펴보면 1985~90년 본의 1인당 소득성장률은 유럽 121개 대도시 지역 중 15위였는데 이후 90~95년 41위, 그리고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긴 이후 95~2000년에는 꼴찌로 떨어졌다. 베를린은 통일 직후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 잠시 성장했으나 90년대 후반 이후 침체됐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도권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한데 현 상태에서는 지방의 동의를 얻기 어려우므로 신행정수도를 건설해 서울과 지방의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상생의 논리'는 지구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폐쇄적인 발상이다. 우리가 좁은 국토를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 '선 지방 발전, 후 수도권 정비'라는 구호에 매달리는 동안 외국의 경쟁 도시들은 세계를 향해 내닫고 있다. 냉엄한 국제경쟁에 뒤처진다면 소득 2만달러 시대는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소요 예산은 규모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가 더 큰 문제다. 정부 주장대로 재정 부담액이 11조2000억원보다 더 적어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쓰지 말아야 하고 더 많이 들더라도 국가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면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 회생과 성장잠재력 배양, 국방비 확충 등 재정수요를 감안할 때 국익에 도움이 될지 확실치 않은 수도 이전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할지 생각해볼 일이다. 민간의 돈도 쓸 곳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모두 옮기든 행정부만 옮기든 수도가 바뀐다는 본질은 불변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 나라의 수도를 이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흔치 않다. 지금이라도 타당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는 것이 마땅하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