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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쌓은 비법 궁금증이 확 풀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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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수원시 화성(華城)은 성벽 높이 7.75m, 둘레 4.2㎞로 정약용이 설계 했다(사진 위). 정약용은 화성 축성 당시 녹로를 발명해 이용했다. 녹로는 줄 끝에 돌을 묶고 반대편에서 도르래에 걸린 줄을 잡아당겨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도록 고안 됐다(사진 아래). [수원시 제공

경기도 수원의 화성(華城). 정조 18년(1794년)에 착공해 1796년 10월 완공됐다. 조선시대 성(城) 중 마지막에 세워졌다. 당시 30세의 정약용이 설계하고 공사를 마무리했다. 성의 둘레는 3600보(4.2㎞), 성벽 높이는 2장5척(7.75m)으로 축조됐다.

화성은 과학적으로 설계된 군사 성곽의 결정판으로 불린다. 토성과 석성의 장점만을 살려 견고하게 축성됐다. 당시 화약의 발명으로 화살과 돌을 앞세우던 전쟁이 조총과 화포의 대결로 바뀌었다. 망루인 공심돈 3개와 4개의 문루(팔달·화서·장안·창룡문), 비밀통로인 암문, 지휘소 격인 장대 등 48개 군사시설을 두고 있다.

중장비가 없던 시절에 이런 성곽을 어떻게 3년 만에 만들 수 있었을까. 다음달 27일 문을 여는 수원 화성박물관에 가면 궁금증을 풀 수 있다. 박물관은 화성행궁 앞의 2만3000㎡ 부지에 연면적 5635㎡ 규모로 지어졌다. 개관일은 정조가 즉위한 음력 1776년 3월 10일을 양력으로 계산해 잡았다.

화성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부가 파손·손실됐다. 그러나 축성 직후인 1801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에 따라 1970년대 들어 대부분 복원됐다. 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크레인 거중기=거중기를 비롯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녹로(<8F46><8F64>), 360도 회전하는 수레 유형거 등 정약용이 화성 축성을 위해 고안한 세 가지 발명품을 만나볼 수 있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김준혁 학예연구사는 “이들 발명품 덕분에 화성 축성 기간을 당초 10년에서 2년9개월로 단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거중기는 움직이는 도르래와 고정 도르래 8개씩을 연결해 만들었다. 좌우에서 15명의 사람이 줄을 잡아당겨 1만2000근(약 7.2t)의 무게를 들어올렸다. 녹로도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일종의 크레인이다. 줄 끝에 돌을 묶고 반대편에서 도르래에 걸린 줄을 잡아당겨 무거운 돌을 들어올리도록 했다.

유형거는 석재·적벽돌(전통벽돌)·목재 등을 운반하는 데 편리하며 바퀴가 튼튼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의 수레 100대로 324일 걸려 운반할 짐을 70대를 사용해 154일에 나를 수 있었다고 한다.

정조가 화성 행차 때 입은 황금갑옷도 고증을 거쳐 제작해 선보인다. 정조의 화성행차를 8폭 병풍으로 그린 ‘화성능행도병’ 모사도(模寫圖)와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영 군사들의 복식과 무기도 전시된다.

박물관은 ‘정조, 화성과 만나다’라는 주제의 개관 기획전을 통해 화성행궁과 화성장대에 있던 14개 편액(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정조가 직접 그린 매화도(서울대박물관 소장), 김홍도가 화성의 가을풍경을 그린 ‘서성우렵도’ ‘한정품국도’, 도화서에서 그린 정조세자책봉의례도를 전시한다.

김용서 수원시장은 “화성박물관은 정조대왕의 업적과 효심을 알아볼 수 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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