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법안 처리 막바지 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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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극도의 금융혼란 와중에 국회에 나가 있는 13개 금융개혁 관련법안이 막바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원안대로 법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는데 반해 정치권은 대폭 칼질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비의 초점은 금융감독기구 통합여부와 중앙은행법 개정문제. 정치권이 이 두개의 알맹이를 빼는 쪽으로 급속하게 의견을 모아가자 정부는 몹시 허탈해하고 있다.

설마했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는 반응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비롯, 정치권의 생각은 처음부터 달랐다.

도대체 지금의 금융위기와 금융감독기구 통합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게 정치권의 주장이었다.

또한 어차피 차기정권에 있을 정부직제 개편을 감안할때 두번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국민회의 관계자는 10일에도 "금융산업 발전과 관련된 법안은 반드시 통과시킨다" 고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독기구 통합은 위장 금융개혁법이어서 보류시킬 수밖에 없다" 고 못박고 있다.

이는 한국은행이나 증권.보험감독원의 생각과 일치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은과 은행.보험.증권등 3개 감독원은 "현재의 금융불안은 금융기관 부실채권 증가와 이에 따른 대외신인도 저하에 원인이 있다" 며 재정경제원이 금융시장 불안을 빌미로 감독기관을 통합해 금융통제권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정부 생각은 전혀 다르다.

한보사태 이후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진 과정의 공통점은 부실대출과 미흡한 사후관리였고 이는 금융감독이 허술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특히 종금사나 할부금융.파이낸스등 제2, 3금융권의 비중이 커지면서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이 은행권과 2, 3금융권을 넘나들며 마구잡이로 '급전' 을 꾸어쓰고 있지만 감독기구간에 원활한 정보 교환이 되지않는다고 보고있다.

정치권이 제안하고 있는 '감독기구간 협의체 구성' 도 재경원이 일찌감치 따져본 방법. 재경원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형식적으로 운용되게 마련인 협의체로는 급변하는 금융산업을 효율적으로 감독하기에 부적절하다" 고 잘라 말할 정도. 때문에 재경원은 감독기구 통합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금융개혁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하튼 감독기구 통합이 좌절될 경우 경제팀으로서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수개월동안 다른 현안을 제쳐두고 매달린 정부로선 어차피 거두지도 못할 씨앗을 뿌린 셈이 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나 외국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우리 정부의 체면에도 손상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이 부실한 금융산업을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 으로 지적하며 문제삼을 때마다 정부는 금융개혁이 얼마 남지않았다고 달래왔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정부로서는 지금의 금융위기 처방과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를 한 묶음으로 처리하려는 작전을 들고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정부계획에 협조하지 않으면 시급한 금융혼란에 대한 처방을 제대로 내릴 수 없다는 식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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