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선희 비디오파일]92년 실화다룬 'LA 폭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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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윌 스미스의 뒤를 이어 크리스 터커라는 걸출한 흑인 스타를 발굴해내고 있는 게 할리우드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흑인이 주연한 영화는 흥행이 신통치 않다.

흑인 얼굴은 구별이 안 가 보기 힘들다는 반응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마음에 우리도 모르게 흑인을 차별하는 의식이 있어서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LA폭동' (새롬) 은 한국인 동포의 피해가 컸던 92년 LA 흑인 폭동을 다룬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하다.

흑인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구타한 백인 경찰들이 무죄로 풀려 나온 것에 분노한 흑인들. 이들에 의해 야기된 폭동에 휩쓸리는 흑인들의 상황과 결과를 무척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다.

흑인 거주지역에서 작은 잡화상을 경영하는 중국인 가정,가난한 남미계 청년, 백인 아내와 동양인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백인 경찰, 백인 동네로 이사한 흑인 가정을 설정해 각자의 입장에서 폭동을 조명한다.

네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며 살아왔지만 폭동에 휘말리면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얽히게 된다.

특정 인종의 잘못이나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촉발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적절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LA폭동' 은 킹 목사의 비관적인 말로 막을 내린다.

"인종 차별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평화나 조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

옥선희<비디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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