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맞은 나토 ‘잔치’는커녕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다음 달 4일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소련의 공산주의 확장에 맞서기 위해 유럽국가를 중심으로 출범했던 나토는 현재 26개 회원국을 거느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역방위 기구로 성장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 한때 호전됐던 러시아와의 관계가 지난해 그루지야 전쟁을 계기로 다시 악화되는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내부적으로도 새 사무총장 선출과 코소보 주둔군 철군 문제로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토는 냉전시대의 산물”이라며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나토는 다음 달 3~4일 프랑스와 독일 접경도시인 스트라스부르(프랑스)와 켈(독일)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향후 방향을 재정립할 예정이다.


◆러시아에 밀리는 나토=지난달 중앙아시아 국가 키르기스스탄이 자국 내 마나스 공군기지를 사용해 오던 미군이 더 이상 기지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결정을 내린 직후 야프 데 후프 스헤페르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 측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키르기스스탄이 미 공군기지를 폐쇄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거부했다. 마나스 기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나토군이 보급품 수송을 위해 이용하는 주요 중간 지착지다. 이 기지를 못 쓰게 되면 나토군의 아프간 전쟁 수행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이를 놓고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9일자에서 “러시아가 과거 소련의 일부였던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을 누르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러시아를 압박했던 나토의 ‘동진(東進)’에 대한 일종의 맞대응인 셈이다.

이로부터 한 달 뒤인 이달 초 나토는 지난해 8월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직후 단절했던 대러 관계를 뚜렷한 계기 없이 정상화하기로 결정했다. 나토는 5일 브뤼셀에서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다음 달 열리는 정상회의 이후 러시아와 고위급 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스헤페르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로서 그들과 대화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나토 가입을 강력히 희망하던 그루지야를 러시아가 초토화시킨 데 대해서는 그냥 덮고 넘어가자는 얘기와 다름없었다.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회원국 가입 문제도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에 밀려 무기한 보류된 상태다. 당연히 러시아 측에선 미소가 흘러나온다.

◆안팎에서 들리는 마찰음=7월 말 임기가 만료되는 현 사무총장 후임을 놓고도 회원국 간에 이견이 많다. 현재 미국· 영국·독일·프랑스 등 나토의 주축 국가들은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를 차기 총장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BBC가 21일 보도했다.

BBC는 그러나 “터키가 라스무센 총리의 자질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다”며 2005년 덴마크 신문에 실린 ‘마호메트 만평’에 대해 라스무센 총리가 사과를 거부한 점을 상기시켰다. 당시 덴마크의 한 신문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를 터번에 폭탄을 두른 테러범의 모습으로 그려 이슬람 사회가 들끓었다. 나토 사무총장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결정되는 만큼 터키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선출될 수 없다.

코소보의 나토군에 파견된 스페인군의 철수 문제도 회원국 간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다. 스페인 국방부가 8월까지 코소보 나토군에 파견된 630명 규모의 자국군 철수 방침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대해 미국 국무부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카르메 차콘 스페인 국방장관은 이달 중순 “스페인군은 이제 복귀할 시간이다”며 “동맹국들과의 협조 속에 단계적으로 8월까지 코소보를 떠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AFP가 22일 전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스페인의 결정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로버트 우드 국무부 대변인은 “1999년 나토군은 병력을 파견하면서 ‘동시 투입, 동시 철수’ 원칙에 합의했다”며 “스페인 정부의 결정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경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