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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토포럼] 주말마다 할머니 장꾼 보러 수천 명 성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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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8일 장흥 토요 장터에는 수천 명의 손님이 몰렸다(작은 사진). 100여 명의 ‘할머니 장꾼들’이 장터에 나와 텃밭에서 손수 기르거나 들판에서 캔 채소·나물을 길가에서 팔고 있다. 한 할머니 장꾼이 ‘지역농산물만 판매합니다’라고 쓰인 등록 명찰을 보여주고 있다(아래). [프리랜서 오종찬]


100여 명이 넘는 할머니들은 길가에서 채소·곡식·나물을 담은 바구니를 늘어놓고 손님들을 불러 세웠다. ‘할머니 장꾼’ 문문자(75)씨는봄동·시금치·쑥을 가리키며 “내가 텃밭에서 기르고 들판에서 캔 것이니 믿고 먹어도 된다”며 권했다. 한우고기 판매장과 식당들도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정남진 한우’는 직원 6명이 고기를 주문받아 무게를 달고 계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는 데도 손님 30여 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흥군 양기수 지역경제계장은 “전국에서 1만 명 이상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탐진강 둔치와 인근 도로는 500여 대에 가까운 차량으로 가득했다. 장흥군이 재래장터를 활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5일장 외에 외지인을 끌어들이기 위한 토요 장터를 열어 관광객 유치와 지역 상인의 매출을 동시에 올리고 있다. 김유성(45) 시장상인회 사무국장은 “여름 관광철에는 7000~1만 명이 와 축제장처럼 붐빈다”며 “이 중 80~90%가 외래 관광객”이라고 소개했다.

장흥 토요 장터는 2005년 7월 처음 문을 열었다.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명물거리로 떠올랐다. 요즘 상점과 노점들의 월 매출은 30~50%씩 늘었다. 두 곳이던 한우고기 판매점의 경우 11곳이나 됐다. 주말 장터 개장 전에는 빈 곳이 많았던 점포(106개)들은 다 차고, 입점 경쟁도 치열하다. 최근 상가부지가 3.3㎡(평)당 950만원에 팔릴 정도로 땅값도 껑충 뛰었다. 이명흠 장흥군수는 “시장 전체의 매출액이 3년 반 사이에 연간 100억여원에서 500억여원으로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재래 장터가 어떻게 인기를 끌었을까. 우선 도시인들의 시골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할머니 장꾼을 끌어들여 시골 장터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했다. 초기에 할머니들이 5일장에만 나오고 주말 장터는 외면했다. 그러나 장흥군은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비를 활용해 전을 펼칠 경우 1만원씩 수당을 주는 당근책을 썼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공돈까지 받게 되자 할머니 장꾼이 157명으로 불어났다.

‘미끼 상품’ 마케팅도 도입했다. 축협과 한우생산단체가 장터에 직판장을 설치하고 한우고기를 시중보다 30~40% 싼 값에 판매했다. 쇠고기를 사 가지고 오면 실비만 받고 구워 먹을 수 있게 상을 차려 주는 식당들까지 생기면서 도시인의 관심을 유발했다. 주말에 하루 한우 30마리 안팎의 분량이 팔리고 있다.

주 5일제가 정착되면 시골을 찾는 사람이 늘 것으로 보고 낡은 시장 건물을 헐고 재건축하는 등 일찌감치 준비했던 장흥군의 정책적 판단도 컸다. 장터 안 무대에서는 토요일마다 두 차례씩 노래·춤 등 공연 등을 펼치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장기자랑대회를 열어 특산품을 주고 있다. 서울에서 왔다는 김양님(45·여)씨는 “살 거리와 볼거리가 많고 어린 시절 장터의 정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평가했다.

장흥=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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