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 ⑫ 윤후명 → 윤대녕 『제비를 기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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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윤후명과 윤대녕,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둘을 혼동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천지간’은 윤대녕에게 이상문학상(1996년)을 안겨준 단편이다. [윤후명 제공]

그는 독일에서 중국 음식점 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뒷골목. 우리는 잠깐 거리를 걸었고, 길가 편의점 앞 노천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는 술에 관하여 내 건강을 걱정해주었다. 내 건강은 그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망가져가고 있었지만, 그건 오래전부터의 진행형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오히려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서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아온 것을 고마워하고 있음이었다. 그와 짝을 이뤄 낭독회 행사장들을 돌다가 누군가가 “선생님의 ‘천지간’을 잘 읽었어요” 하고 내게 인사하는 통에 얼른 그를 부른 적도 있었다.

『은어낚시 통신』 이래 그의 소설들은 새로운 별자리처럼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별자리로 달려가는 길은 사하라의 증기 협궤열차 ‘붉은 도마뱀’의 궤도와 같이 침목 사이사이가 아득하기만 했다. 그는 ‘빛의 걸음걸이’를 따라 걷는 법을 제시해주었다. 그 정치한 ‘글결’을 접하는 것만 해도 ‘문학의 걸음걸이’를 따라 걷는 것이었다. 그건 붓질이 나이테처럼 스며 있는 문장으로 예술에 다가가는 비밀 행위였다. 적외선으로 그려놓는 생명의 은밀한 잉태였다. 그의 소설은 그 사실을 은유하면서도 한편 들킬까봐 저어하는 몸짓을 내게 시사한다. 나는 그가 내린 동앗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거나 우물 속으로 내려간다. 알 수 없는 경험이 원초적으로 내 속에 공명하여 생(生)의 궁륭을 만들어준다. 많은 별들이 우르르 한 곳으로 흘러갔는가 하면, 어느 집에는 환한 고래등을 내걸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의 뒤에 숨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문학에 감사한다.

『제비를 기르다』는 그의 최근작 소설들이다. 전작들을 이어주는 고리가 있으면서도 변모가 새삼스럽다. 섬세의 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풍토에서 그는 뼈대를 곧추 세우고 이제껏 못 보던 겹의 서사를 내보인다. 현실과 환상의 교차는 차라리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시정신을 함의로 한 진정한 외로움의 항변이 그를 새로운 작가로 재탄생하게끔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서울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그가 어떠한 문학적 행동반경을 이루어갈지 궁금해진다.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철마다 제비를 따라 집을 나가던 어머니…. 떠나간 제비를 기다리고, 다시 돌아온 제비를 반기는 일도 ‘기르다’는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까. 헤어짐과 기다림, 우연한 만남이 이어지는 인생의 속성을 성찰하는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 등 8편의 단편이 담겼다.

◆윤후명=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먼저, 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의 문학은 줄곧 사랑에 대한 탐구로 향했다. 시집 『명궁』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소설집 『둔황의 사랑』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여우 사냥』 , 장편소설 『별까지 우리가』 『약속 없는 세대』 『무지개를 오르는 발걸음』 『협궤열차』, 산문집 『꽃』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불교문학상·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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