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맛있는 투자상품이 나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금융사의 경우

다음 달부터 시중은행 창구는 오전 9시에 문을 연다. 지금보다 개·폐점 시간이 30분씩 앞당겨진다. 9시에 문을 여는 증권사와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영역이던 은행과 증권사가 이처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은 향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몰고올 금융시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물론 자통법 발효 이후 당초 기대와 달리 변화의 속도는 다소 느리다. 금융위기라는 변수가 생겼고,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칸막이=자통법은 금융사에 대해 두 가지 큰 규제를 풀었다. 우선 증권·자산운용·선물·종금·신탁 등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법을 하나로 통합해 업종 간 영역 구분을 없앴다. 상품 규제도 대폭 풀렸다. 금융투자상품의 범위를 일일이 열거하는 대신 ‘투자성(원본손실가능성)이 있는 모든 금융상품’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해 새로운 상품이 쉽게 출현할 수 있도록 했다.

규제 완화가 노리는 것은 경쟁의 활성화다. 이를 통해 금융사의 대형화·전문화를 촉발하고 자본시장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증권사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효원 연구원은 “한국판 골드먼삭스처럼 대형 투자은행으로 발전하든지,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은 대기업 계열의 증권사와 은행계열의 증권사가 자금조달이나 연계상품 개발에서 앞서 나가며 양대 축을 이룰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IB’ 시동=삼성증권은 최근 홍콩에 투자은행 전문 증권사와 리서치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최근 인력 확보에 나섰다. 국내에서 사람을 내보내는 대신 철저하게 홍콩 현지의 우수 인력을 채우겠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다. 이처럼 공을 들이는 것은 홍콩을 중국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박준현 사장은 “앞으로 금융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면 아시아 지역의 리더가 글로벌 금융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IB의 몰락 여파에 국내 대형 증권사들은 IB로의 전환을 당장 서두르지는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봄’을 대비해 해외진출과 함께 내부 조직을 정비하는 등 기반조성에 나서고 있다. 현대증권은 IB본부를 기업금융과 인수합병(M&A)을 각각 담당하는 두 개 조직으로 분리해 전문화했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형 IB 모델’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파이낸셜 어드바이저리 본부’를 신설했다. 국내외 M&A를 중개하고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또 자기자본투자(PI)를 전담하는 자산운용본부를 새로 만들었다. 금융공학 기법을 활용한 파생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기존의 투자금융본부도 개편했다. 법인을 대상으로 한 코스피 선물옵션 중개 영업에 강점을 보인 굿모닝신한증권은 앞으로 상품 선물, 해외 선물 등을 통해 다양한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다.  

조민근 기자

투자자의 경우

자통법 시행으로 금융 소비자들은 다양한 투자상품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투자자 보호도 강화됐지만 아직 실감하긴 이르다. 금융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다 보니 금융회사들은 투자자의 눈길을 확 끌 만한 획기적인 상품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금융회사들은 서서히 자통법에 걸맞은 다양한 상품 개발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에 머지않아 투자자의 구미를 당길 상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책임 커져=앞으로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금융회사는 위험한 투자상품을 권유할 수 없다. 또 원하더라도 아무 상품이나 추천할 수 없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투자자의 성향을 체크하고, 그에 맞는 상품만 권유해야 한다. 투자경험이 적은 노령층이나 주부에게 복잡한 금융상품을 팔아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애초부터 없애기 위해서다. 특히 주식선물이나 주식옵션 등 파생상품과 자금의 일부를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파생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대한 투자는 한층 까다로워졌다. ‘만 65세 이상이면서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경험이 1년이 안 되는 사람’은 비록 투자성향이 공격적이라 할지라도 투자가 제한되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 위험보다 위험도가 높은 금융투자상품 선택 확인서’란 서류를 작성하면 위험도가 높은 금융상품에도 가입할 수 있다. 파생상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서류에 서명하고 나면 “금융회사가 엉뚱한 펀드를 팔아 손해 봤다”고 시비를 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만큼 투자자의 책임이 커진 것이다.

이런 절차가 귀찮다면 온라인에서 금융상품을 고르는 방법도 있다. 법적으론 온라인에선 투자자 성향 진단 같은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라인에서도 투자자 성향을 체크하는 증권사가 늘고 있다.

◆다양해지는 상품=이르면 오는 6월부터 증권사도 은행처럼 직접 현금 입출금, 송금, 계좌 이체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자통법이 증권사에도 고객을 대상으로 지급 결제 업무를 할 수 있는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증권 계좌를 열면서 은행에 연계 계좌를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은행계좌에 비해 자금이체·지로납부·신용카드 결제 등에서 불편했던 증권계좌의 단점도 사라진다. 동양종금증권 윤성희 마케팅본부 이사는 “은행·증권사 간 경쟁이 활발해져 각종 수수료도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상품의 종류도 다양해진다. 자통법 이전까진 법에 열거된 금융투자상품만 허용돼 탄소배출권 펀드와 같은 신종 금융상품을 팔려면 법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제한은 사라졌다. 날씨나 재난, 범죄발생률, 실업률 등과 연계한 상품이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