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힘이다 <3>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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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문구를 들어 보았을 겁니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나오는 구절이죠. 민주 정부의 설립 원칙을 밝힌 겁니다. 하지만 연설 전문을 영어나 한글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많을 줄로 압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연설의 하나로 꼽힙니다. 그만큼 심금을 울리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272개 단어밖에 되지 않아 읽기에 큰 부담도 없습니다. 연설의 국·영문 전문과 함께 연설 당시의 상황, 연설의 역사적 의미, 현대적 의미 등을 살펴봤습니다.

이승호 기자

영어 원문 전문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we can not consecrate-we can not hallow-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한글 번역 전문

87년 전 우리 조상은 자유에 기반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명제를 받드는 새로운 나라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렇게 세워진 이 나라가, 아니 어떤 나라라 하더라도,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커다란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전쟁터에 모여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 바친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이 전쟁터의 일부를 봉헌하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이 땅을 봉헌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살아 있거나 죽었거나, 이곳에서 싸운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이상 보탤 수도, 뺄 수도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한 말을 세계가 주목하거나 오래 기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용사들이 한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숭고하게 앞장서 이끌었지만 아직 끝내지 못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바쳐져야 할 것은 바로 살아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위대한 과업을 위해 우리 자신을 봉헌해야 합니다. 명예롭게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목숨까지 바쳐 가며 이루고자 했던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굳게 다짐합시다. 하나님의 은총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를 낳을 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도리스 굿윈 저, 이수연 역 『권력의 조건』 참조).

게티즈버그 연설 뒷 이야기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앞 연단에 선 링컨은 쇠테 안경을 쓰고 원고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간결하고 감동적인 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토로했다. 2분 여 동안의 짧은 연설이 끝나자 청중은 얼어붙은 듯했다. “완전히 실패했군.” 관중의 반응에 실망한 링컨이 내뱉은 말이었다. 링컨이 몸을 돌려 자리를 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리스 굿윈 전 하버드대 교수가 지은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이 전한 게티즈버그 연설 장면이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의 하나로 꼽힌다.


게티즈버그는 남북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다. 북군과 남군 합쳐 16만 명 이상이 참전해 5만여 명이 전사했다. 전투 현장에 지어진 국립묘지에서 링컨은 개관 기념 연설을 했다. 그러나 링컨은 주 연설자가 아니었다. 당대의 명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 국무장관이 주 연설자였다. 에버렛은 링컨에 앞서 2시간이 넘게 연설했다. 에버렛은 나중에 편지를 보내 “대통령께서 2분 동안 한 것처럼 저도 2시간 동안 개관 행사를 빛나게 할 훌륭한 연설을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고 고백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세계 역사의 고비 때마다 다시 등장했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3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의 첫 머리 “백 년 전, 한 위대한 미국인이…”는 100년 전 게티즈버그에서 연설한 링컨을 지칭한다. 프랑스 헌법(1958년 제정)은 프랑스공화국의 설립 원칙으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규정했다. 버락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우리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구상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게티즈버그 연설은 272개 단어로 이루어진 짤막한 문장 속에 민주주의 이념을 압축했다. 국민의 민주정부 수호 의무와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헌신 의지를 담았다. 남북전쟁은 국가 통합을 위한 싸움이자 자유의 재탄생 과정으로 규정된다. 이를 위해 링컨은 연설을 게티즈버그라는 싸움터에서 시작하는 대신 미국이란 나라의 탄생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만큼이나 혹독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미국을 탄생시킨 독립선언서의 자유와 만인 평등이라는 원칙의 소중함을 일깨운 것이다.

링컨은 미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정적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내각에 끌어들였다. 그래야 흑인 노예 제도를 놓고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링컨의 내각을 ‘라이벌 팀’이라고 할 정도였다. 링컨의 리더십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 독립 이후 뜨거운 감자였던 노예 문제를 해결했다. ‘제2의 건국’을 이룬 링컨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 됐다. 미 역대 대통령 중 링컨을 가장 존경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아 링컨만 한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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