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G20정상 회담 감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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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흘 뒤 영국 런던에선 G20 정상회담이 열린다. 금융위기가 확산되던 지난해 말 첫 모임을 가진 후 두 번째다. 금융위기가 일단 최악의 고비는 넘긴 듯하지만 잠복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여파가 실물 부문으로 파급되며 교역과 생산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제는 분명하다. 다만 최우선 과제가 무엇이냐에 대해선 분명한 시각차가 엿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장 촉진을 위한 신속한 행동, 이를 위한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 동참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규제시스템 수립, 이를 통한 새로운 국제금융체제 구축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논의에는 이번 위기의 책임이- 금융시스템이건, 과잉 소비의 경제적 모럴이건-누구에게 있느냐를 보다 분명히 하려는 공세적 유럽과, 책임소재를 따지기에 앞서 시스템 복구와 수요 회복이 먼저라는 수세적 미국의 주도권 다툼이 배경에 깔려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유럽인들 현재진행형인 동유럽 금융위기에서 보듯 금융 운용상의 심각한 결점이 어찌 없었을 것이며, 요즘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미국인들 수요의 중심축으로서 금융위기 발생 이전 글로벌 성장을 견인해 온 공이 왜 없겠는가. 게다가 이번 회의는 이들뿐 아니라 발전 정도, 성장의 토대, 정치 체제 등이 상이한 20개국이 참여하는 큰 회의다. 이럴 경우 합의에 이르는 쉬운 방법은 두루뭉술한 융합형으로 가는 것이다. 지난 13~14일 예비회담격으로 런던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합의한 ‘세계 경기회복과 금융시스템 강화를 위한 추가 조치 마련’과 보호주의에 대한 우려 표명이 융합형 성명의 골자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소 애매모호한 표현이 각자 해석의 자유와 행동반경을 넓혀준다는 것은 동서고금 외교의 요체다. 그러니 문구를 놓고 다소의 줄다리기는 있겠지만, 결국 알맹이는 몰라도 포장만큼은 딱히 흠잡기 힘든 ‘작품’을 내놓을 것이란 점도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G20이란 회의가 생기고, 거기에 한국이 참여한 것 자체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임에도, 글이 좀 삐딱하게 흐른 것은 아마 기대가 크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국제’와 ‘공조’라는 보편적 이상을 앞세우면서도 머릿속에는 ‘자국’ 과 ‘보호’라는 정치적 고려가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좀 더 확실히 잠재울 수 있는 명료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조치, 이런 게 하나라도 나왔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이번 회의를 지켜보자.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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