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삼성’ 같은 골프 브랜드 어디 없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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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중학교 시절 일제 소니 워크맨을 손에 넣고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 ‘소니’는 우리에게 꿈이요, 환상이었다. 날렵한 디자인의 단말기에 오렌지색 커버를 씌운 헤드폰은 예술이었다. 몇 년 뒤 국내 가전업체에서 비슷한 기능을 가진 워크맨을 내놨지만 디자인도 품질도 소니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텔레비전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깔끔한 디자인을 앞세운 소니 텔레비전은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진귀한 물건이었다. 소니는 국내 가전업체들이 넘지 못할 벽처럼 보였다. 당시만 해도 국내 업체가 만들어낸 텔레비전은 조악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30년이 흘렀다. 이제 소니는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삼성과 LG가 만들어내는 TV는 미국의 대형 가전몰에서 소니 제품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휴대전화 역시 전 세계 곳곳의 마켓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다.

난데없이 워크맨과 텔레비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국산 골프용품 업체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골프용품 시장은 외국 브랜드가 아니면 맥을 못 춘다. 캘러웨이와 테일러메이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일본의 혼마·던롭·다이와 등의 클럽을 찾는 골퍼도 많다. 드라이버 한 자루에 500만원이 넘고, 클럽 한 세트에 수천만원씩 하는 초고가의 외국 제품만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비싼 값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외국 브랜드의 클럽들은 품질이 뛰어난가.

2007년 캘리포니아 골프스쿨(PGCC) 연수 시절의 에피소드. 필자가 “한국에선 드라이버 한 자루에 500달러는 기본이고, 1000달러를 넘는 것도 많다”고 했더니 미국인 클래스메이트가 되받았다.

“뭐야, 드라이버 한 자루에 1000달러라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군. 드라이버에 다이아몬드라도 달렸단 말인가.”

캘러웨이 골프가 설립된 것은 1982년이었다. 캘러웨이와 수위를 다투는 테일러메이드가 생겨난 것은 이보다 3년 앞선 79년이었다. 이들은 골프 붐을 타고 3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세계 최고의 골프용품 업체로 성장했다.

반면 골프 클럽에 관한 한 한국은 여전히 불모지에 가깝다. 국산 골프클럽 업체라고 해야 손에 꼽을 정도고, 그 가운데 몇몇은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텔레비전에 이어 휴대전화도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나라가 왜 유독 골프 클럽만큼은 약세를 보이는 걸까. 도대체 미제나 일제 클럽을 따라잡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인가. 최근 국내 업체들의 신제품을 지켜보면서 골프용품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했다.

완성품은 아니지만 국산 용품 업체인 MFS골프가 내놓은 오직(Ozik) 샤프트는 현재 40여 명의 PGA투어 프로가 사용 중이다. 82년 설립된 코오롱 엘로드가 출시한 드라이버는 어떤 브랜드의 제품과 비교해도 품질에 손색이 없다. 빅야드 골프공도 칭찬할 만하다.

텔레비전과 휴대전화가 그랬듯이 품질 좋은 한국산 샤프트와 드라이버·골프공이 전 세계 골프시장을 휩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한 자루에 수백만원씩 하는 비싼 가격을 매겨놔도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웃지 못할 촌극이 사라지길 빈다.

중앙일보 골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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