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어떻게 멈추겠나, 징그러운 나의 인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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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03면

“자고로 영화라면, 액션 영화가 최고, 숨가쁜 총격전과 추격 신, 생각할 필요 없고 눈이 즐거운 영화, 살짝궁 나와 주는 섹스 신, 근데 오늘 이 영화, 왕 짜증 멜로, 우리 불쌍한 남성 관객들, 그녀는 울고 짜고, 나는 코를 골겠지… 잠깐만 이게 뭐지, 왜 갑자기 눈물이, 코끝이 찡해 오네, 이러다 내가 혹시 우는거!”

THIS WEEK HOT: 뮤지컬 ‘아이 러브 유’

뮤지컬 ‘아이 러브 유’는 두 쌍의 남녀 배우가 수십 가지 역할로 변신하며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 20가지를 엮어내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러면서도 여자 때문에 이런 영화나 뮤지컬을 보러 가야 하는 남자들의 불평도 재치 있게 다뤄준다. 누구나 공감할 생활밀착형 내용이면서도 기발한 장면들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첫 데이트를 위해 몸단장하는 남녀의 공통점과 차이점, 짝꿍에게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케 하는 스포츠와 쇼핑, 운전석의 폭군과 잔소리의 여왕, 장례식장을 부킹장으로 이용하는 황혼의 로맨스 등.

다시 말해 두 시간 동안 연애의 모든 단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풀코스 종합선물세트다. 연인과 부부의 데이트용으로 적합하도록 폭소 코미디와 감동적 로맨스를 적절히 배합했고 세련되면서도 바탕엔 사랑스러움이 깔려 있다.

‘아이 러브 유’는 대작·대형 뮤지컬은 아니지만 중형 알짜배기라 할 만하다. 영화로 치면 ‘귀여운 여인’이나 ‘러브 액추얼리’ 급이다. 1994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뒤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히트, 롱런하고 있는 작품이다. 남자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여성을 희화화한 ‘황금전화기상’ 에피소드라든지, 정작 자신은 결혼을 못 하고 남의 들러리만 수없이 서는 ‘부케 수집가’ 이야기는 다른 영화에서 써먹기도 했다. 가위 로맨틱 코미디의 바이블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이 처음 우리 입맛에 맞게 각색된 것은 2004년으로, 유수의 상을 받고 2005년에는 블록버스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누르고 1위를 기록하며 2006년까지 공연됐다.

3년 만에 돌아온 이번 공연은 ‘관록과 새로움의 조화’를 내세우고 있는데, 특히 초연 당시 흥행을 이끌었던 원년 멤버 남경주의 귀환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초맨을 만났다며 한탄하는 여자에게 “그래 뻥 좀 쳤어, 있는 척 좀 했어, 그럴 수도 있지, 왜? 남자니까! 방 청소는 안 해, 설거지도 안 해, 왜? 남자니까! 뭐 그리 잘났냐고? 강하거든! 예쁜 여자 좋아하고, 안 씻고, 코 후비고, 트림해도, 자존심은 졸라 강한, 남자!”라며 가슴을 팡팡 두드리는 모습도 그렇게 귀여울 수 없는 남경주는 40대 중반에도 여전히 ‘원조 로맨틱 가이’임을 과시한다. 교도소에서 개최된 이색 단체 미팅에 뛰어드는 ‘미스터 하이드’로 농익은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든지, ‘부부생활 만족 컨설턴트’로 등장하는 능청스러운 모습 또한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20년간 뮤지컬 배우로 살아온 남경주에게 특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주로 대형 작품에만 서다가 중형 무대인 ‘아이 러브 유’를 통해 관객과 밀접히 호흡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고 이 한 작품에만 600여 회의 출연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도 3월부터 9월까지 장기 공연 일정이고 더블 캐스팅도 아니다. 즉 장장 6개월간 거의 매일 무대에 서야 한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다운 선택이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물론 쉽진 않지만 15가지 인물로 변신해야 해서 지루하지는 않고 이 작품을 통해 한 역할을 오래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방법,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엔 어떤 배역이 들어와도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더란다.

남경주에게 이 뮤지컬은 사적으로도 각별한 작품이다. 초연 당시 노총각이던 그는 이 작품을 보러 온 팬과 결혼했고 지난해는 딸 고은이를 낳았다. 뮤지컬 2막에 펼쳐지는 ‘결혼 이후의 사랑 이야기’가 이번 공연에서 더 의미심장해질 수밖에 없다. “예전의 난 반쪽의 인생에 불과했거든, 결혼 후에야 드디어 우린 하나가 된 거지,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 깨달은 건, 나랑 당신은 그저 3분의 1쪽에 불과했던 거지, 애를 키우다 보니 나도 왠지 어리광 떨고파, 넘어지면 아야 하고 졸리면 코 자고, 이걸 어떻게 멈추나? 징그러운 나의 재롱….”

그러고 나면 공연의 마지막이다. “내 묫자리는 영감 옆, 마누라 옆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는 노년 남녀의 이중창이 등장한다. “사랑할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완벽할 리 없는 그 사랑과 맞춰가며 노력하며 살아라”라는 작품의 메시지가 긴 여운을 남긴다. “나 또 여기에, 상처 입고 또 줄 걸 알면서, 또다시 마음의 문을 여네, 지겹게 해봤다 싶어도, 언제나 새로운 것이 사랑….”

9월 13일까지 KT&G상상아트홀. 평일 오후 8시,토요일 3시·7시, 일요일·공휴일 2시·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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