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유럽문화 통신]여성을 보는 ‘시대의 시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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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07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럭셔리 문화가 바뀌었다. 부자들은 유명 브랜드 제품을 사용해 그들의 경제 능력을 과시하기보다는 자신의 몸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고 성형수술과 피부 관리를 위한 각종 크림에 돈을 쓴다. 젊어지거나 젊어 보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매스미디어는 늘씬한 모델들을 앞세워 광고를 하고, 소비자는 모델이 광고하는 제품을 구입하며 그 모델처럼 아름다워지는 꿈을 꾼다.

‘익스트림 뷰티 인 보그’, 3월 4일부터 5월 10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잡지 ‘보그(VOGUE)’는 종종 이런 현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사진들로 사회 트렌드를 설명하곤 한다. 1892년 뉴욕에서 창간된 이 패션 잡지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으로 세계 최고의 위치를 지켜 가고 있다. 지난 2세기 동안 보그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들과 많은 스타일리스트를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사진만이 아닌, 사회현상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이 중심이 된 전시회가 밀라노에서 열렸다.

의류 업체인 돌체 앤 가바나가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마련한 ‘익스트림 뷰티 인 보그(EXTREME BEAUTY IN VOGUE)’. 2009년 밀라노 F/W 레디 투 웨어(Ready-to-wear) 패션쇼 기간 중인 3월 4일 시작됐다. 돌체 앤 가바나가 미국 보그에 의뢰하여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진들이다.

한계를 극복하고 인습을 거부한 사진작가들의 용기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리처드 아베던, 헬무트 뉴턴, 어빙 펜, 애니 리버비츠, 스티븐 클라인 등 17명의 보그 잡지 사진들의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됐다. 1940년대 이후 지난 80년간 미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장으로 사용된 팔라초 델라 라지오네(Palazzo della Ragione)는 두오모 광장 맞은편에 있는, 18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은 전시장 내부의 조명을 연극 무대처럼 어둡게 처리하고 자주색 벨벳으로 벽 전체를 늘어뜨려 신비한 분위기를 강조했다. 약 1m의 공간마다 하나씩 사진을 걸고 하이라이트 조명을 쏘아 모든 시선을 사진에 집중시켰다.

전시회 제목이 말해 주듯이 사진작가들은 당시의 보그(Vogue·유행)와 사회현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사진들은 동시대의 여성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화장과 머리 스타일을 했는지도 보여 주지만, 동시에 어떤 삶을 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고 싶어 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도 알 수 있게 한다.

수술대에 누워 로봇을 조종해 스스로 자기 성형하는 여인, 너무 많이 부풀린 입술을 부각한 작품 등 아름다움을 아이러니하게 표현한 사진들은 관람객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게 하기도 했다. 특히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자동차를 들며 체력을 단련하는 파티복 차림 여인의 사진(스티븐 클라인 작)에서는 아이러니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부분적으로 나눠 촬영한 후 포토샵으로 합성하고 처리한 이 사진은 아름답고 날씬한 원더우먼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의 생각을 절묘하게 드러냈다.

이것이 바로 ‘보그’의 눈으로 본 동시대의 모습이 아닐까. 즉 귀엽고 예쁘게 화장하는 것보다, 육체를 성형하는 것보다 더 중요시되고, 잔잔한 위트 대신 도발적인 이미지를 찾고, 쇼킹한 이미지가 안전한 사진보다 더 이목을 집중시키는 현실말이다.


이탈리아 밀라노를 무대로 활약 중인 보석디자이너. 유럽을 돌며 각종 전시회를 보는 게 취미이자 특기. 『더 주얼』(2009)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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