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02>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7호 16면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김인식 감독이 ‘위대한 도전’이란 말을 했을 때 몸이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 늘 조용하고 정중한, 때론 수줍어 보이는 그에게서 “이제부터 한국야구의 ‘위대한 도전’을 해 보겠습니다”라는 거침없는 선언적 수사가 나왔다. 그렇다, 그건 분명 ‘선언’이었다. 그가 강조하려는 메시지는 뚜렷했다. 그리고 한 권의 책 제목과 닮아 있었다. 『Good to Great』(짐 콜린스). 풀어 말해 ‘좋은 야구를 넘어…위대한 야구로’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야구를 넘어 위대한 야구로

한국야구 good to great
우리 야구는 위대했다. ‘뛰어난 야구’의 단계를 넘었다. 일본과의 결승전이 끝난 뒤 알았다. 한국야구의 기량적 우수성은 2006년 WBC 4강,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세상이 인정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의 선언처럼 이번 대회에서는 그 단계를 넘어 위대한 야구가 됐다. ‘우수한’과 ‘위대한’의 차이는 어디에 있나. ‘인사이드’는 그 차이가 ‘spirit(정신)’에 있다고 본다. 한국야구는 결승에서 그걸 보여 줬다.

우쓰미 데쓰야(요미우리)가 이용규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진 건 지난 20일. 이번 대회 네 번째 한·일전에서였다. 그리고 그가 김성한 코치에게 “미안해요(친절하게도 한국말로)”라고 사과의 뜻을 전해 온 건 23일. 결승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 시차 때문에, 그리고 그걸 문제 삼지 않는 대표팀이 지나치게 조용하고 정중해서, 화가 났었다.

왜 공을 던진 날 곧바로 사과하지 않고 결승전 전날 사과했을까. ‘인사이드’는 ‘한국과 다시 만날 줄 몰라서’였다고 해석한다. 그날은 미안하지 않았다가 한국이 베네수엘라를 이기고, 일본도 미국을 이겨 다시 만나게 되니까 미안해졌다? 그건 “내일 경기에 우리(일본) 선수들을 맞히지 말아 달라”는 제스처였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래서 ‘눈에는 눈’ 식으로 응대하지 않은 우리에게, 너무나 평소 그들다운 모습을 보여 준 일본에 모두 화가 났다. 그리고 기다렸다. 우리 투수 가운데 누군가가 적어도 ‘화들짝 놀랄 만한’ 몸쪽 공으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 주기를.

그러나 위대한 한국야구는 경기 내내 기다리는 ‘인사이드’를 초라한 소인배로 만들었다. 빈볼을 던지기는커녕 병살타를 막겠다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일본 선수도 용서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를 피하지 않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결승전에서 패한 뒤 그날, 그 다음 날까지 분했지만 그 뒤에 ‘그 야구에 승부를 초월한 더 높은 정신(精神)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의 ‘위대한 도전’의 의미를 되새겼다. 어색하고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지만 김수환 추기경이나 마틴 루서 킹의 정신이 그 안에 있었다고 믿고 싶다.

한국야구 built to last
한국의 위대한 야구는 완성(built)됐다. 이제 그 야구를 어떻게 계속(last)하느냐다. 필요한 건 기량보다 정신이며 돔 구장보다 학교, 캐치볼보다 교육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김인식이라는 한 사람의 리더에게 의존했다면 이제 그 정신이 야구계 전체로, 선배에서 후배에게로 퍼져 가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