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협상 창구’ 평양 스웨덴 대사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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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가로지르는 대동강 남쪽인 문수동에 자리한 스웨덴 대사관이 억류된 미 여기자 2명의 북·미 간 협상 창구로 떠올랐다. 미 국무부가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을 여기자 문제를 논의하는 공식 채널로 공개하면서다.

26일 외교부에 따르면 스웨덴 대사관은 북한과 공식 외교 관계가 없는 미국을 대신해 북한 내에서 미측 입장을 대리하는 ‘이익대표’ 역할을 맡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은 1995년 9월부터 스웨덴 대사관에 이 같은 역할을 부여했다”며 “미국만 아니라 호주·캐나다도 스웨덴 대사관이 유사시 자국의 평양 내 대리 역할을 하도록 약속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국 등이 스웨덴 대사관을 대북 채널로 삼은 배경엔 스웨덴이 서방 국가 중 최초로 평양에 공관을 만든 인연이 작용했다. 스웨덴은 1975년 3월 상주 공관을 설치한 뒤 34년간 자리를 지켰다. 정영조 전 스웨덴 대사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했던 스웨덴은 사회주의 국가와의 외교 관계도 빨리 텄다”며 “이 때문에 북한도 스웨덴 대사관을 대서방 창구로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평양의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미국에 ‘테러 반대’ 입장을 전달하는 등 스웨덴을 적극 활용해 왔다.

북한과 스웨덴의 나쁘지 않은 관계엔 돈도 작용했다. 주 스웨덴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스웨덴이 북한에 빌려준 차관은 3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박정희 정부 시절 차관 형식으로 북한에 들어간 스웨덴제 채광 장비들이 대남 땅굴을 파는 데 이용된 의혹까지 나왔을 정도다. 정 전 대사는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의 북한 대사관은 북한이 북구·발트해 국가를 관할하는 거점 공관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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