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협조융자협약' 사실상 무산…해태·뉴코아 논의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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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업의 연쇄부도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은행권에서 논의중인 협조융자 협약이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협약의 성사여부를 가늠할 시금석 (試金石) 이 됐던 해태와 뉴코아에 대한 협조융자가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협조융자 협약마련을 위한 실무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판에 협조융자 협약 같은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고 대놓고 말한다.

협조융자 협약을 거의 반강제적으로 은행권에 떠넘겼던 재정경제원도 이제는 관심이 시들하다.

"은행들이 알아서 논의중이므로 더 두고보자" 고 말은 하면서도 굳이 밀어붙일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해태와 뉴코아에 대한 협조융자 중단은 협약의 실효성이 없음을 반증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부실기업의 처리에 사실상 정부가 손쓸 방법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조융자에 나섰던 채권은행들은 종금사들의 비협조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은행권에서 협조융자로 대준 돈이 종금사의 채권회수로 돌아가는 상황에선 더 이상 추가자금 지원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협약 실무작업반의 한 관계자는 "제2, 3금융권이 채권회수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협조융자는 온갖 부실채권을 은행권이 도맡아 떠안는 자충수에 불과하다" 고 지적한다.

문제는 사활의 기로에 선 종금사를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종금사들은 이제 정부의 당부에도 아랑곳 않고 한푼이라도 챙기겠다며 어음을 돌리고 있다.

결국 은행권은 이런 상황에서 해태와 뉴코아에 대한 협조융자를 더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손을 들었고 정부도 이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그동안 대선 전까지는 대형부도를 막아보겠다고 '관치' 라는 눈총을 무릅써가며 채권단에 협조를 구해왔다.

그러나 부도유예 협약은 기아사태를 계기로 효과가 이미 반감됐고, 이번에 추진중인 협조융자마저 시작도 해보기 전에 약효를 잃고 말았다.

또 지난달부터는 시장경제원리의 후퇴라는 수모를 겪어가며 직접 개입에 나섰지만 정부의 사태수습 능력은 이제 한계를 드러냈다.

그렇다고 부실기업 처리를 채권금융기관들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잇따른 대형부도의 와중에 금융기관들은 이미 어떤 기업을 살리고 어떤 기업을 정리할지에 대해 판단력을 상실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경제를 온통 뒤흔든 증권.외환위기속에 정부나 채권은행단이 부실기업까지 챙길 여력이 없어졌다" 며 개별기업의 부도처리 문제에 더이상 개입할 뜻이 없음을 피력했다.

결국 "한계기업의 정리가 끝나 더 이상의 부도는 없을 것" 이라던 정부의 장담은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재경원과 은행권에서는 여전히 협조융자 협약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협조융자 협약이 어떤 식으로 마련되더라도 그 실효성은 별반 크지 않을 것이란게 중론이다.

다만 세상이 달라져, 정부가 아무리 압력을 넣는다해도 일선 금융기관들이 무조건 따라가진 않는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셈이라고 하겠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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