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살아있는 중세 유럽전통…체코 크룸로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독일 바에에른주 레겐스부르크는 도나우 강변에, 체코 크룸로프는 블타바 (몰다우) 강변에 있다.

서로 나라와 전통이 다르지만 이들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아직까지 6백~7백년씩 된 건물이 골목마다 즐비하며 고딕과 르네상스와 바로크가 살아 숨쉰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곳 모두 자신의 전통과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유럽의 진짜배기 전통이 바로 이 '두 도시 이야기' 속에서 만난다.

마치 도나우와 블타바강이 시원 (始源) 은 다르나 흑해에서 만나는 것처럼. 레겐스부르크와 크룸로프의 거리는 자동차로 2시간30분 (2백㎞) .최근 두 도시는 하나의 연계관광권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체코에는 문화의 도시 크룸로프가 있다.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4백㎞ 떨어진 곳에 있는 소도시. 건축된 지 7백년이나 됐으면서도 전화를 입지 않은 고성이며 집들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지난 92년 UNESCO (유엔경제과학문화기구) 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해마다 6월이면 인구 1만5천명의 시골인 크룸로프가 시끌벅적해진다.

덴마크 여왕인 마르그레테2세.스웨덴국왕 카를 구스타프 16세.영국 찰스왕세자등 세계적인 명사들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13세기초 건축된 크룸로프성의 안마당에서 바로크시대 악기로 연주되는 중세음악제에 귀를 기울이거나 18세기 실내장식이 그대로 남은 2층 '가면의 방' 에서 귀족적인 가면무도회에 참석한다.

귀족들뿐 아니다.

독일과 멀리 미국등으로부터 일반 관광객들도 매년 1백30만명씩 찾아든다.

이들은 여름철 저녁 한때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몰다우 (체코명 블타바) 강변 수상무대에서 헨델의 수상음악을 듣거나 대낮 중세시대 차림의 남녀들이 시내를 활보하는 중세의상행렬에 끼어들기도 한다.

이같은 축제이벤트가 1년에 5개. 이처럼 크룸로프가 문화축제의 터전이 된 것은 시 전체가 문화와 역사에 대한 공명상자 역할을 하고있기 때문. 좁은 골목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도심의 가옥수가 약 2천채. 그 벽돌이나 기왓장.서까래 하나에도 수백년씩의 세월이 묻어있다.

대부분 사람이 살거나 상가등으로 활용되므로 삶이 화석화된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반부터 사회주의정권을 거치는 동안 크룸로프는 한때 구시대와 낙후.부조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구권 개방이후 이곳 시장인 얀 보드로슈 (48) 를 비롯해 시민 전체가 도시복구와 홍보에 발벗고 나선 결과 역사의 향기를 되찾게됐다.

한국인 관광객수는 아직 통계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적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로부터 크룸로프까지 당일 (50마르크) 또는 1박2일 (1백50마르크) 버스관광 상품이 나와있긴 하지만 레겐스부르크도 모르고 크룸로프는 더 모르기때문에 찾는 사람이 없다.

자신만의 즐거움 또는 배움을 위해 남 안가는 곳을 곧잘 고르는 젊은 배낭족들에게도 이곳은 미개척지로 남아있다.

지난주 이곳을 답사한 송향근교수 (42.부산외국어대 언어학과) 는 “크룸로프야말로 성숙된 관광이나 배낭여행을 위한 적지” 라고 말한다.

이제 늦가을. 혹시라도 체코에 가게 되면 배낭속에 작은 녹음기라도 지참하자. 스메타나의 '몰다우강' (교향시 '나의 조국' 중) 이야말로 크룸로프에 대한 최상의 찬가가 될 것이다.

크룸로프 (체코) =임용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