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보는 우리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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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가가 얼마나 더 떨어져야 하는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지금이 바닥이라고 말하는 외국인들은 거의 없다.

런던에 소재한 외국증권사의 한국데스크는 "그동안 한국을 좋게 보고 고객들에게 추천해 왔는데 낭패보게 됐다" 면서 풀이 죽어 있다.

수익증권의 환매 요구가 늘고 있어 한국 주식을 팔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주가가 더 내려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금융기관.투자자.시장을 믿어야 한다" 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뉴욕의 클레멘테 캐피털의 영 조 사장도 같은 생각이다.

"주가가 충분히 떨어져 내재가치에 접근하면 사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마련" 이라고 본다.

"주가 하락을 인위적으로 막으면 한편으로 어정쩡한 상태에서 불안심리를 부추기고 다른 한편으론 시장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는 것이다.

환율등 거시경제지표는 단기적인 영향을 미칠 뿐 궁극적으로 주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한국데스크는 "투자는 경제를 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사는 것" 이라면서 "고객들이 한국의 많은 기업이 자산보다 많은 부채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고 불안의 핵심을 찌른다.

소위 매크로 (거시경제) 는 멀쩡해도 속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경제성장률 6%가 설득력을 잃는 대목이다.

UBS (싱가포르) 아시아경제분석실장인 피 케이 바수는 "한국의 올해 수출이 물량기준으로 35%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지만 수익성은 별개의 문제" 라고 말한다.

경상수지가 개선되면 주가도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국은 그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 불확실성, 환율 상승, 기업실적 부진등의 문제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본격적인 경기회복 시점을 내년 하반기께로 잡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준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 이라고 스미스 바니의 마이클 포터 폐쇄형펀드담당전무는 지적한다.

기아를 공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발표를 '거꾸로 가는' 대표적인 예로 든다.

익명을 요구한 홍콩의 한 펀드매니저는 "한국은 지금이라도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면서 인수.합병 (M&A) 도 시장에 맡기라고 주장한다.

"대부분 주식의 한도가 소진되지 않은 실정에서 외국인 투자한도를 26%로 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고 묻는다.

한국 증시의 최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외국에서 보는 시각이다.

경기회복이 분명하고 기업의 수익성이 호전되는 확신이 설 때까지 매수를 유보할 작정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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