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워치] 가택연금으로 입막음 했지만 … 중국 ‘08 헌장’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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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관련 법규나 정책에 근거해 검색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23일 중국 최대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 ‘08 헌장’(憲章)을 입력하자 뜨는 글이다. 08 헌장은 지난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60주년에 맞춰 중국의 지식인과 반정부 인사 등 303명이 연대 서명으로 발표한 것이다. A4 용지 다섯 장 분량으로 자유와 평등, 인권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아래 중국에 민주적·공화적이며 헌정이 실시되는 정치제도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 자유와 인권 등은 법률상의 조문으로만 존재하지 실제 생활에서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개정과 직접선거 등 모두 19개 항목에 달하는 요구사항을 담은 08 헌장은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에 대한 비난이나 다름없다. 1977년 체코슬로바키아의 ‘77 헌장’을 본뜬 민주화 선언문인 셈이다.

서명엔 평론가이자 반정부 인사로 유명한 류샤오보(劉曉波)를 비롯해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비서였던 바오퉁, 유명 원로 경제인 마오위스 등 학자와 기자, 기업인, 농민,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현재 인터넷에선 ‘08 헌장’이 검색되지 않지만 은밀한 방법으로 서명에 참여한 이가 8500명을 넘는다고 외신은 전한다. 중국 당국이 긴장하는 이유다. 특히 08 헌장 서명 운동의 주역인 류샤오보가 최근 체코 비정부기구로부터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되는 등 서방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 역시 중국 정부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지난 1월 말에는 08 헌장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개혁 촉구 서한인 ‘09 상서(上書)’가 중국의 리푸 전 신화사부사장, 두다오정 전 광명일보 총편집 등 원로 지식인 16명의 연대 서명 방식으로 발표돼 중국 당국을 당황케 하고 있다. ‘09 상서’는 ‘08 헌장’보다 어조가 부드럽긴 하지만 중국 지도부들에게 보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고, 또 당 중앙의 업무 분위기를 쇄신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또 다른 08 헌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현재 류샤오보를 가택연금하고, 서명 참여자들에 대한 경위 조사 작업을 하고 있지만 더 이상의 강력한 단속 조치에 대해선 신중을 기하고 있다. 자칫 인권탄압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09 상서가 출현하는 등 민감한 정치 시즌을 맞아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신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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