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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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전주를 휘저은 23일 민주당 지도부의 얼굴엔 그늘이 졌다. 정 전 장관의 입국과 동시에 이광재 의원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방침이 전해진 뒤라서 오전 최고위원회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웠다.

정세균(얼굴) 대표는 24일로 예정된 정 전 장관의 공천 담판에 대해선 “만난 뒤에 이야기하겠다”며 말을 아낀 채 검찰 수사에만 날을 세웠다. 정 대표는 “표적 사정에 편파 수사에 공안 탄압에, 이래서야 국민이 통합되겠느냐”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한다. 제발 정치 보복을 그만하고 야당탄압을 중단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의 구속으로 미뤄볼 때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얼마나 많은 정권 실세들을 통해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 무마 로비를 벌였을지 짐작이 된다”며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부정부패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고 역공세를 취했다.

민주당은 YTN 노조 간부 체포,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방침 문제를 같은 맥락에서 따졌다. 정 대표는 “언론인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며 “지금이 무슨 계엄 상황이냐”고 주장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도 “과거 독재 정권은 형식적으로나마 자유·인권·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정하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며 “인권 관련 업무의 증가 추세를 볼 때 인권위 축소는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지도부는 바깥의 우환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당내의 시선은 온통 정 대표와 정 전 장관의 담판에 쏠려 있었다. ‘출마 반대론’을 폈던 수도권 의원들의 목소리는 수면 아래로 깔린 반면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라는 최악은 막아야 한다”는 원로들의 우려의 소리가 들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말문을 열었다.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깨지지 말아야 한다. 깨지면 공동 실패”라며 민주당의 단합을 강조했다. 그는 “누구를 (공천) 하든 안 하든 분열하지 말아야 한다. 가뜩이나 약한 야당 아니냐”고 지적했다. 24일 담판에 대한 중진들의 기대치는 조금씩 달랐다.

박지원 의원은 “담판이 잘못되면 모두가 죽는데 두 분이 만나 그런 결정을 하진 않을 것”이라며 “정 전 장관이 통 큰 결정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성순 의원은 “정 전 장관에게 당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며 “굳이 나가겠다면 그렇게 해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진 의원은 “양쪽이 모두 너무 많이 나가 있는 상태여서 절충이나 중재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 전 장관이 차선책(인천 부평을 출마)도 받지 않겠다면 최악을 막는 수밖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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