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라디오 … 진보는 블로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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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간 여론몰이 대결이 ‘라디오 대 블로그’ 구도로 흐르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양측이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에 각각 핵심 진지를 구축한 뒤 일합을 겨루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보수진영의 중심 축은 여전히 ‘토크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보수적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가 정치적 현안에 대해 관련 인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여론의 흐름을 보수 쪽으로 이끄는 것이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에게 맞짱 토론을 제안해 화제를 모았던 러시 림보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매일 600개의 라디오 네트워크를 통해 3시간 동안 방송되는 그의 프로그램을 듣는 청취자 수는 하루 평균 1300만 명에 달해 공화당의 실질적인 지도자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퓨(Pew)’에 따르면 정기적인 라디오 청취자는 주로 보수적인 성향의 중산층 남성들이다.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5%인 반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8%에 불과해 보수진영의 진지로는 안성맞춤이다. ‘토크 라디오’는 1990년대 최고조에 달해 공화당(조지 W 부시) 집권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진보 진영은 인터넷 미디어의 활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앞장선 사람이 오바마다. 그는 백악관 홈페이지부터 블로그 체제로 운영한다. 대통령의 주례 연설은 과거와 같이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지만, 오바마는 동영상도 함께 제작한 뒤 인터넷에 올려 라디오 연설이란 말 자체가 무색해졌다.

최근 이란에 대한 화해 의지를 담은 영상은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도 올렸다. 진보진영은 또 러시 림보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림보 와이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물론 진보진영도 라디오를 이용하고, 보수진영이 제작한 블로그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 같은 대결구도는 각기 장단점이 있다는 평이다. 자동차 운행이 많은 미국인들에게 라디오는 아직도 유용한 매체다. 동시에 1000만 명 이상에게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 그러나 블로그 등 인터넷 미디어는 시간 제약 없이 다양한 형태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젊은 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유리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최근의 경제위기도 보수진영에게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보수 성향 진행자들의 설 땅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LA타임스는 최근 캘리포니아주에서만 6개의 토크 라디오 프로그램이 돈이 덜 드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체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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