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사상 최대라는데 개인 여윳돈 늘었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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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가 늘고 가계 빚이 사상 최대라는데 어떻게 개인 여유자금이 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늘었을까.

한국은행이 24일 내놓은 '1분기 자금순환 동향'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한편에선 빚 얻어쓰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다른 한편에선 여유 계층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번 돈을 금고에 쌓아놓았다는데, 기업의 자금부족이 4년 만에 최악인 사정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자금은 풍성한 반면 중소기업은 자금난이 더 심해진 때문이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1분기에 금융권에서 개인들이 새로 빌린 돈은 5조1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8조원 가까이 줄었다. 가계 빚이 늘고는 있지만 증가폭은 둔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개인 부문의 부채 총액은 485조5000억원(가구당 3174만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국민 1인당 금융권 부채도 1007만원으로 늘어났다.

개인이 금융권에 새로 맡긴 돈은 17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3조4000억원 줄었지만 차입금이 줄어든 것보다는 감소폭이 작았다. 이에 따라 가계가 금융권에 맡긴 돈에서 빌린 돈을 뺀 자금잉여액은 전분기보다 3조4000억원 늘어난 12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1999년 1분기 이후 5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그 결과 빚 갚을 여력이 커졌다. 부채 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금융자산/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2.06에서 지난 1분기 2.08로 높아져 5년 만에 처음 상승세로 돌아섰다.

변기석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부채 상환 능력이 커진 것이 소득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소비 위축으로 인한 저축 증가의 결과라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이 경기 침체로 고전하면서 운전자금 수요가 크게 늘었다. 기업 부문 전체로는 자금부족액이 15조7000억원에 달해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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