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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의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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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그 뒤 한반도 현안과 관련한 청문회를 보기 위해 하원 외교위원회 회의장을 찾았다. 복도도 아닌 회의장 안에 버젓이 헨리 하이드를 비롯해 역대 외교위원장 4명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생각이 초상화에 미치니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내내 무심코 지나쳤던 얼굴들이 내 기억 속에서 튀어 나왔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실 앞 복도에는 사람의 눈 높이 정도 위치에 역대 차관보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유신 시대에 한국 대사를 지내고, 지금도 정동의 미 대사관저에 이름을 남긴 필립 하비브도 웃고 있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신문 사진을 통해 본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는 링컨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돌이켜보면 미국에선 신임 대통령이 누구 초상화를 걸어 놓느냐가 늘 화제였다. 그것은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요, 특권이었다.

미국의 초상화 또는 인물사진 문화가 공적 영역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사무실이 있는 ‘내셔널 프레스 빌딩’ 꼭대기 13층의 언론인 클럽에도 세계 각 나라 유명 언론사에서 활약했던 명(名) 워싱턴 특파원들의 빛 바랜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타자기 또는 마이크를 앞에 놓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빌딩 어디에선가 지금이라도 마주칠 것만 같았다. 프레스 빌딩과 맞붙은 호텔의 점심 뷔페가 의외로 싸고 맛있다기에 동료들과 그곳을 찾았을 때 우리는 로비 한 구석에 걸린 창업주 부자의 전신 초상화를 감상해야 했다.

초상화가 미국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언론인 클럽의 사진 속에서 나는 중앙일보의 선배 특파원들을 떠올렸다. 인터넷은 물론 컴퓨터도 없던 시절, 보잘것없던 조국에 세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땀 흘렸던 그들의 분투 정신을 지금 내가 알고 있는가. 아주 작은 자리일지라도 내 앞에 사람이 있었고, 내 뒤에 사람이 있을 거라는 ‘시간 속의 내 위치’와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라크 대사로 자리를 옮기는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가 그들의 집무실 주변에 늘 걸려 있는 선배들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떠올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에게 “그래, 이 자리는 영원한 게 아니지, 언젠가는 나도 저기에 사진이 걸리겠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 건가” 되묻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워싱턴 한복판에 거대한 초상화 박물관이 있는 것도, 시내 곳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도, 서점에 역대 유명 인사들의 화보집이 넘쳐나는 것도 미국을 잘 보여주는 단면들이란 생각이 든다.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