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19.20일) 저녁,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아 보던 KBS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드라마는 중학생(만 15세 이상)도 시청이 가능해, 청소년 보호 시간인 주말 저녁에 방영되고 있다.
MBC 미니시리즈 '불새'는 초등학교 6학년도 시청할 수 있는 '12세 이상 시청가' 등급이다. 그러나 이번주(21.22일) 방영분에도 대낮에 납치를 하고, 음주 운전을 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나왔다.
2002년 11월 1일부터 드라마등급제가 실시됐지만, 아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명확한 심의기준이 없는 탓이 크다. 현재 드라마 등급은 각 방송사에서 자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폭력성.선정성.언어의 부적절성'을 기준으로 해당 연령대에 적합한지를 살핀다는 식의 개괄적인 기준이 대부분이다. 특히, 방송국의 필요에 따라 정할 수 있는 '15세 시청가'의 경우 '청소년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 등의 모호한 기준마저 없다. '심의담당자와 PD가 논의해' 등급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드라마 등에 적용하기 위해서라는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은 실제로 성인드라마에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간.젖가슴에 문신을 새기는 장면 등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SBS '장길산'도 15세 이상 등급이다.
5월 종영된 SBS '2004 신인간시장'의 경우 제작진마저 19세 이상 등급으로 봤지만, 15세 이상 등급을 받았다. 19세 이상 등급은 청소년 보호 시간대(평일 오후 1~10시, 휴일.방학 기간 오전 10시~오후 10시)인 주말 낮 재방영이 불가능하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일수록 재방 시청률도 높다. 평일 밤 10시 이후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라도 '15세 이상 시청가' 이하의 등급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방송사의 이해 관계가 '고무줄 등급제'의 이유다.
구희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