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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리더의 힘, 문·사·철·수·물·화·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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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힘든 이 시기에 인문교양학(Liberal arts)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지난달 25일자 뉴욕 타임스는 이런 제목의 기사를 썼다. 경제위기로 미국 인문학이 흔들린다는 내용이다. 미국 대학교육에서 인문학의 쇠퇴는 장기적인 추세다. 지난 50년간 전공자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인문학의 실용성ㆍ경제성에 대해 줄곧 의문이 제기돼 왔다. 인문학계 일각에서는 “인문학의 실용성을 ‘구차하게’ 입증하려 해도 이는 승산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차라리 인문학 자체의 가치에 충실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다면 미국의 금융 모델이 손상을 입은 것처럼 미국의 인문학 교육도 이제는 모델이 아니라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었는가.

한국에서도 올 신학기 대학의 수강신청 과정에서 폐강된 강의 대부분이 인문학과 자연과학 강의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동아시아 문명사’ ‘문화의 철학적 이해’ ‘나노기술의 이해’ 같은 것들이다. 인문학엔 문학·사학·철학, 자연과학엔 수학·물리·화학·생물이 있다. 이른바 문·사·철·수·물·화·생이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빈곤은 한국과 미국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많은 학생의 전공과 수업 선택 기준은 ‘당장 취업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로 단순화되고 있다. 이들은 인간과 자연현상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보편성을 탐구하는 인문교양적 성찰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미래의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떠야 한다. 세상의 위대한 리더들, 상당수 최고경영자(CEO)가 인문교양적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건 뭘 의미할까. 한국의 어떤 CEO는 ‘뛰어난 사장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문·사·철에 투자하라”고 답했다. 문·사·철 탐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자각할 때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성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인문학적 상상력을 주로 본다고 한다.

강대국 미국을 만드는 데 교육이 기여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미국의 엘리트는 대부분 대학에서 인문교양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는다. 특히 인문학은 여러 학문 분과 중에서 소통력ㆍ이해력ㆍ창의력ㆍ연구력ㆍ분석력ㆍ비판력ㆍ통찰력을 키우는 데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위에 언급한 뉴욕 타임스 기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셰익스피어ㆍ포크너ㆍ링컨ㆍWEB 두보이스를 인용해가며 설득하는 오바마는 인문학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하는 인물이다”고 적고 있다. 인문학적 교양이야말로 리더의 최종적 덕목임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에서 인문학의 힘은 대학 안보다 바깥에서 느껴진다.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주최하는 인문학 조찬 특강인 ‘메디치21’은 경영자 대상 유료 사이트인 SERICEO의 핵심 오프라인 프로그램이다. 목요일 아침 주로 롯데호텔에서 진행되는 CEO들의 모임인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이사장 장만기)의 특강도 주로 인문교양 주제에 집중된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리더가 되려는 자, 모름지기 문·사·철·수·물·화·생에 힘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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