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막연한 공포를 넘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6호 15면

최근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20대 택시기사가 많은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알다시피 에이즈 바이러스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서서히 파괴해 각종 감염증이나 악성종양이 생겨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질환이기 때문이다.

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

그런데 에이즈 바이러스도 이제 상당 부분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을 많은 이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더라도 치료를 받으면 병이 발현되지 않거나 병의 진행이 늦춰질 수 있으며 전염력도 감소하게 된다(아직 치료약이 좀 비싼 게 문제다). 다시 말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모두 다 ‘에이즈 환자’는 아니며, 에이즈 환자도 치료를 받는다면 당뇨병처럼 관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LA 레이커스에서 활동하던 미국 NBA 최고의 선수 매직 존슨이 1991년 에이즈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고 은퇴한 뒤에도 꾸준한 치료와 관리를 받아 현재 자선사업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감염이 걱정되는 경우에는 서둘러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검사부터 받아야 할까.

1차 검사는 혈액을 통한 항체검사가 가장 보편적이다. 혈중에 에이즈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발견되면 에이즈 감염 ‘의심’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혈액에서 항체가 검출된다는 것은 면역이 생겨 치유됐다는 증거가 되지만 에이즈의 경우는 항체가 생겨도 바이러스를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액 항체 검사는 결과가 나오는 데 수일 이상 걸리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최근엔 검사 결과를 20분 내에 알 수 있고, 혈액뿐 아니라 입 안 점막액을 이용해 검사할 수 있는 ‘오라퀵’이란 방법이 개발돼 우리나라 일부 병·의원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오라퀵은 구강을 의미하는 ‘oral’과 ‘quick’의 합성어다. 이는 잇몸에서 점막액을 긁어내 임신 테스트와 유사한 방법으로 검사하는 것으로, 기기상에 연분홍색 선이 두 개 나타나면 양성으로 판단된다. 이 오라퀵 테스트도 기존의 혈액항체 검사에 견줄 만큼 정확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항체 검사들은 에이즈 바이러스를 직접 검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검사 결과만으로 감염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에게 이런 항체 검사를 하면 둘 다 정확도가 99% 이상이지만 건강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땐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다른 바이러스 감염이나 자가면역질환같이 항체 반응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 있을 때도 양성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같이 에이즈 감염률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는 ‘거짓 양성’일 확률이 더 높아진다. 1차 검사 결과 양성(에이즈 감염 의심)으로 나오더라도 많게는 80~90%가 실제 에이즈 감염이 아닐 수 있으므로 반드시 확진 검사를 받아야 한다. 확진용으로는 혈액을 이용하는 ‘웨스턴 블롯’이란 검사법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반면 1차 검사 결과가 음성(정상)으로 나왔다 하더라도 에이즈 감염의 위험이 높은 경우에는 3개월 뒤 한 번 더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 에이즈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도 항체가 생성되는 데 보통 2~8주가 소요되며, 드물게는 6개월이 지나야 항체가 생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관계 후 3개월 이내에 받은 항체 검사에서는 에이즈 바이러스 음성으로 진단됐어도 3개월 후 한 번 더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안전하다.

이렇듯 에이즈 바이러스는 더 이상 막연한 공포의 대상은 아니다. 물론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겠지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