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광고 ‘화장발’ 걷어내면 밋밋한 ‘생얼’이 보인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6호 26면

심리학 실험으로 시작하자. 두 집단에 어떤 인물에 대한 여섯 가지 특성을 똑같이 설명했다. 다만 순서는 정반대였다.
집단A : 똑똑하다→근면하다→즉흥적이다→비판적이다→고집이 세다→시기심이 많다
집단B : 시기심이 많다→고집이 세다→비판적이다→즉흥적이다→근면하다→똑똑하다
인물에 대한 인상 평가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집단A가 집단B에 비해 소개받은 인물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1946년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시가 행한 실험이다. 이른바 ‘첫인상 효과(Primacy Effect)’다.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홈쇼핑 보험

첫인상 효과를 적극 활용한 분야가 홈쇼핑 보험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월 9900원에 다 보장’ ‘최고 1억원 보장’ 등을 강조하는 쇼 호스트의 말과 화면을 꽉 채우는 큼지막한 글씨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상 가입하려고 하거나 보험금을 탈 때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보험소비자연맹 박은주 실장은 “홈쇼핑 보험상품은 지나치게 장점만 강조한다”며 “약관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홈쇼핑 내용만 믿고 가입하는 경우엔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광고 문구만 생각하고 가입하지만 보험금은 ‘광고’대로가 아니라 철저히 ‘약관’대로 지급된다. 홈쇼핑 보험 광고의 ‘화장발’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민얼굴’을 봐야 한다.

줄지 않는 과장광고
2005년 1000억원에도 못 미쳤던 홈쇼핑 보험 시장은 지난해 2000억원을 넘어섰다. 최근 들어 성장세가 둔화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른 보험 판매 시장에 비해 성장률이 높다. 홈쇼핑 업체 입장에서도 보험은 효자 상품이다. 그나마 편성 비중이 작다는 업체가 전체 방송 시간의 10%를 보험에 할애한다. 특히 다음 달 보험료 인상을 앞두고 보험사들은 홈쇼핑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케이블 TV를 틀면 늘 어디선가 보험 광고가 나올 정도다.

홈쇼핑 보험의 인기는 단연 싼 보험료 덕분이다. 그렇다고 홈쇼핑이 똑같은 보험을 특별히 싸게 팔지는 않는다. 홈쇼핑은 대개 저가인 보험만 취급한다. 주로 의료비보험·실버보험·어린이보험 등이다. 보험료 부담이 큰 종신보험·연금보험 등은 잘 다루지 않는다. 손해보험협회 최종수 팀장은 “홈쇼핑 보험의 싼 보험료를 보고 소비자는 특별 판매 보험이라고 착각하기 쉽다”며 “그러나 보험은 딱 보험료만큼만 혜택이 있는 것이라 싼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홈쇼핑 보험 과장광고가 과거에 비해 줄기는 했다. 금융감독원이 2007년 11월부터 광고를 사전심의로 전환하고 광고심의위원회를 개편하는 등 자율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장광고 논란은 여전하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홈쇼핑 보험 관련으로 접수된 민원은 과장광고를 포함해 모두 232건으로 2007년(197건)에 비해 늘었다. 사전 광고심의를 통과했지만 소비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대형 홈쇼핑 업체가 아니라 케이블 TV 프로그램 사이에 방송되는 홈쇼핑 광고, 일명 ‘인포머셜 광고’가 더 문제다. 보험사가 아니라 보험사 대리점들이 광고 주체인데 과장의 여지가 더 많다.

약관, 반드시 확인해야
홈쇼핑 광고의 민얼굴을 보려면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최고 보장 금액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3년 전 홈쇼핑에서 실버보험 광고를 보고 가입한 손모(68)씨는 최근 사고를 당해 척추 골절 진단을 받았다. 보험에서는 최고 1500만원이 보장된다고 했지만 막상 손에 떨어진 돈은 180만원에 불과했다. 1500만원을 모두 받으려면 뼈가 부러져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 돼야 한다.

특히 홈쇼핑에서 주로 취급하는 건강보험은 대개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합산해 최대 보장 금액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간암에 걸려 교통사고로 허리를 못 쓰게 된 사람이 365일 입원해야 4억원을 받을 수 있는 식이다. 보장하는 대상이 많을수록 합산 금액은 커지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최고’라는 말에 혹하기보다 발생 가능성이 큰 질병·사고에 대한 보장 금액이 얼마냐를 확인해야 한다.

특약 사항도 살펴야 한다. 홈쇼핑에서 제시하는 보험료는 특약을 뺀 기본 보험료다. 그래서 싸다. 보장을 받으려면 각종 특약에 가입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실버보험이다. 흔히 실버보험에 가입하면 치매 발생 때도 보험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일부 실버보험은 치매 보장이 특약으로 따로 분류돼 있다. 광고에 나오는 싼 보험료로는 치매 보장이 안 되는 셈이다.

100세 보험도 비슷하다. 100세까지 보장한다고 하지만 모든 조건에 대해서가 아니다. 일부 상품의 경우 질병상해, 뇌혈관질환 진단비, 뇌졸중 진단비, 급성심근경색증 진단비, 암 수술비 등에 대해서는 80세까지만 보장한다.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할 때는 입·통원 의료비가 보장되는지 살펴야 한다. 일부 상품의 경우 수술비만 보장하고 입·통원 의료비는 특약 사항에 포함시킨다. 큰 수술을 제외하면 수술비 못지않게 많이 드는 게 입원비다. 입원비 항목이 포함돼 있는지 따져야 한다.

갱신 기간도 중요하다. 의료보험이나 실버보험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가입 첫해에는 1만원도 안 되는 보험료에 암과 뇌졸중 등을 보장한다고 광고하지만 갱신 기간인 1년 후에는 보험료가 껑충 뛰는 경우가 많다. 몇 년 납입하다 보면 고가로 팔았던 비슷한 상품보다 보험료가 더 비싸지는 경우도 있다.

‘만기 시 전액 환급’이라는 말도 따져봐야 한다. 보험료로 낸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약으로 납입한 보험료는 빼거나 보험료 중 영업비를 뺀 금액만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또 만기 생존 시라는 조건이 붙기도 한다. 환급률을 최고 99%라고 강조하지만 평균 환급률은 20% 선에 그친다. 또 물가상승률을 연 5%만 감안해도 현재 1억원의 가치는 20년 후 3분의 1로 쪼그라든다.

‘입원 일당 3만원씩 받는 1억 한도 실비보험은 ○○회사뿐’이라는 등의 문구도 주의해야 한다. 쇼 호스트의 현란한 설명에 소비자는 앞뒤 재지 않고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이번이 아니면 가입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이는 일부만 사실이다. 홈쇼핑 판매 보험 중에서는 유일할지 모르겠지만 설계사나 인터넷 등을 통하면 보장 내용이 비슷한 보험을 찾을 수 있다.
 
작은 글씨를 봐라
홈쇼핑 보험 광고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큰 글씨 외에 작은 글씨도 눈여겨봐야 한다. 작은 글씨가 보험사가 감추고 싶어 하는 보험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고 4억원 보장을 약속한 건강보험이 4억원을 지급하는 경우는 병에 걸렸을 때가 아니라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다. 이는 밑에 작은 글씨로만 표시된다.

그러나 방송인 만큼 화면이 금방 바뀐다. 방송만으로 광고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상품명만 확인해 뒀다가 방송이 끝난 후 인터넷 등을 통해 구체적인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인스밸리 고진선 실장은 “보험에 가입할 때는 보장 내용, 보험료, 보장기간, 납입기간, 보험료 환급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며 “보험은 평생 상품이니 다른 상품과 비교한 후 최종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존에 가입하고 있는 보험과 보장 내용이 겹치는지도 따져야 한다”며 “보장 내용이 비슷하다면 돈은 더 내고 혜택은 그대로 받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가입 전에 약관을 꼭 확인해야 한다. 약관은 보험회사 홈페이지 상품공시실을 활용한다. 약관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상품 내용을 쉽게 요약·정리한 상품요약서를 활용한다. 역시 보험회사 홈페이지 상품공시실의 상품 목록에 가면 찾을 수 있다.
그래도 가입하고 나서 후회된다면 청약 철회 절차가 있다. 가입 후 15일 이내에 보험회사에 연락해 청약 철회를 하면 환불이 가능하다. 15일이 경과했다 하더라도 자필 사인 또는 녹취를 안 했다면 3개월 이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또 약관 내용과 관련해 중요한 설명을 듣지 못했거나 약관을 받지 못했도 3개월 이내 계약 취소가 가능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