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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대기업·외국자본 막는 3불 없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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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인규(59)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은 20일 “신문·대기업·외국자본의 방송 진입을 막는 ‘3불(不) 정책’은 이제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과잉규제라는 것이다. 미디어는 서로 융합하고 있는데 매체 간 벽을 침으로써 자칫 한국 미디어 산업이 공멸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구조에선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출현하기 어렵다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현재의 방송법은 신문과 대기업 등이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보도채널에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 발의된 방송법 개정안은 그 제한을 일정 부분 푸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는 “방송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 1980년 컬러 TV 등장 때보다 수십, 수백 배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 1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IPTV(인터넷 TV)와 관련해선 “사교육을 줄이는 교육혁명을 전면에서 이끌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초대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방송과 뉴미디어 분야에 두루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최근엔 IPTV 출범의 최대 난제였던 ‘지상파 재송신’ 문제를 중재해 IPTV가 시장에 안착하는 데 공을 세웠다.

-미디어 융합의 현실은 어떤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 등 디지털 혁명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나 제반 여건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자의 저항과 법적인 미비 등이 이유다. IPTV 역시 출발 단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필요한가.

“미국의 경우 1980년대와 90년대 미디어 빅뱅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GE 등 다양한 기업들이 방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세계 주요 미디어 그룹 대부분을 미국이 점유하고 있는 데엔 그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신문·방송·통신이 제각각의 길을 걸어왔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하는 법적 뒷받침이 안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등장은 우리에게도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나 그렇다. 전자·반도체는 세계적 기업이 있는데 왜 방송에선 세계적 미디어 기업이 나올 수 없는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미디어법 개정안 중 방송 진입·소유 규제 완화가 쟁점이 되고 있다.

“나도 지상파 방송 출신이지만 신문·대기업·외국자본을 적대시하는 3불 정책은 시대에 맞지 않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그렇게 규제하는 경우는 없다. 3불 정책을 폐지하되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은 구체적으로 기준을 만드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외국 사례를 참조하면 해법이 나올 거다.”

-방송의 공익성과 산업성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다.

“나도 30년간 방송인으로 지냈지만 방송이 공익성만 추구해야 한다는 건 오류다. 방송엔 산업적 속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를 잘 조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영방송에 대해선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 공영성을 지키고, 나머지는 산업적 효과를 함께 고려하는 유연성이 요구된다.”

-6월 국회에서 ‘3차 미디어 입법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야 추천으로 구성된 20명의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에서 현명한 결론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논의됐던 것들을 잘 점검하고 조합하면 절충점이 나올 것으로 본다. 6월 국회에선 미디어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디지털화가 완료되면 신규 방송 사업자도 많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민주 사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다원성이다. 매체 수를 인위적으로 규제한다는 발상은 가능하지 않다. 수용자들이 다양한 콘텐트를 접할 수 있도록 사업자 구도를 가져가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기능이다. 다매체·다채널 시대엔 철저한 사후 규제가 필요하다. 그래야 콘텐트를 정화해 나갈 수 있다.”

-한국이 콘텐트 강국으로 가려면.

“IPTV도 그렇지만 결국 미디어 산업의 성패는 콘텐트에 달렸다. 흔히 지상파를 콘텐트의 보고라 하지만 상당수가 디지털 아카이브(저장) 작업도 안 된 상태다. 콘텐트 지원도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다. 콘텐트 발전을 이끌 컨트롤 타워가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콘텐트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회사의 출현도 기대해봄직하다.”

-올 1월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IPTV의 과제는.

“역시 콘텐트다. 기존의 중요한 콘텐트(킬러 콘텐트)도 공급해야 하고 IPTV만의 특화된 콘텐트도 제공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가 있다. 그중 더 중요한 쪽은 후자다.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지만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IPTV에 맞는 쌍방향 콘텐트를 개발해 내야 한다.”

-IPTV가 활성화하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나.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2012년까지 3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일자리 수를 맞힐 수는 없다. 나는 새 일자리의 절대 다수가 콘텐트 분야에서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차별화된 콘텐트. 질 좋은 콘텐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ETRI 예측치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다.”

-IPTV 사업에 대해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만 나온다는 비판도 있다.

“7~8년 전 KBS에서 뉴미디어 본부장을 할 때 솔직히 네이버와 다음의 약진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사업자들은 성공을 자신했지만 주변에선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네이버를 한번 보자. 영향력·매출액·직원 수 등을 볼 때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그동안 매스미디어 위주의 브로드캐스팅에 익숙했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미디어의 개인화가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인터넷 기반(IP·인터넷 프로토콜)에서 가장 경쟁력 있게 구현된다. IPTV가 콘텐트 산업을 함께 부흥시켜 가면서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IPTV로 교육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IPTV가 공공서비스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그 대표적인 분야로 교육·의료·지방자치를 생각하고 있다. 교육의 경우 영어 등 다양한 서비스가 이미 제공 중이지만 여기에 더해 수능 콘텐트를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1년에 60억여원을 들여 제작되는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을 IPTV에 곧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 역시 전국 학교에 IPTV망을 깔아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렇게 되면 IPTV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

-2012년 방송의 디지털화가 완료되는 건 어떤 의미가 있나.

“80년 시작된 컬러 TV 시대는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은 그보다 수십, 수백 배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준비 상황은 만족스럽지 않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수상기 보급이다. 2012년 말까지 대다수 국민이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는 TV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난 가전업체에서 국민 보급형 디지털 수신기를 보급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라고 본다. 그래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디지털 시대의 혜택을 맛볼 수 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KBS를 떠났지만 공영방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여전하다. 난 방송에서도 그린벨트, 즉 청정지대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부담감 없이 권유할 수 있는 채널이 있어야 한다. KBS가 다른 방송사들처럼 드라마 경쟁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과 지식을 살려 진정한 공영방송의 틀을 만드는 작업에 일조하고 싶다.”

글=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김인규 회장은=KBS가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전환한 1973년 공채 1기로 입사했다. 2003년까지 30년간 KBS에서 일하면서 정치부장·보도국장·뉴미디어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언론학 박사로 2003~2006년 고려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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