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네덜란드 조선업과 보험 무슨 관계가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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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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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버크 지음, 구자현 옮김
살림, 452쪽, 2만원

과학과 기술이 이룬 인류사의 혁신과 창조를 말하기 위해 지은이는 엉뚱하게도 기독교 네스토리우스파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성모 마리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아 5세기 로마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린 교파 말이다. 그들 이야기를 잠시 따라 가보자.

네스토리우스파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비잔틴 제국을 떠나 페르시아로 이주했다. 고대 그리스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축적했던 방대한 지식도 책과 머리에 담아 함께 가져갔다. 세월이 흘러 7세기 이슬람 제국인 아바스 왕조가 중동에 들어서면서 그 지식은 아랍어로 번역됐다. 네스토리우스파 수도원 속에 묻혀 있던 수학, 천문학, 의학 지식이 필요했던 알 만수르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제정일치 통치자)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무슬림(이슬람교도)은 기도를 하기 위해 메카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알아야 했고, 아잔(기도시간을 알리는 코란 낭송)을 하기 위해 시간도 파악해야 했다. 그 해결책을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간직하고 있던 헬레니즘 학문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을 점령하면서 함께 따라갔다. 그러다 1105년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물러났고 그들이 두고 간 방대한 아랍어 서적이 라틴어로 번역됐다. 그러면서 서구에선 오랫동안 사라졌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학문체계가 다시 부활했다. 기독교회는 고전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요람이 됐다. 햇빛이 부족해 해시계를 설치하기 곤란했던 북유럽의 교회에선 고대지식을 바탕으로 처음 물시계가 설치되더니 차츰 다양한 종류의 시계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시계 제작기술은 서구 기술문명, 나아가 산업혁명과 대량 생산체계로 가는 길을 열었다.


지은이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경제나 인간 생활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그는 ‘커넥션’, 즉 관계와 연속성에서 과학과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예로 지은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조선업을 시작으로 유럽 경제제도와 그 발전사를 다루고 있다. 당시 유럽은 경제 성장으로 목재의 사용이 늘면서 숲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국 숲은 보호하고 대신 발트해 연안국가를 대체 공급원으로 삼았다. 그 무역을 독점한 게 네덜란드였다. 이렇게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네덜란드인들은 화물 적재량이 많은 무역선을 창안했다. 당시 유럽의 모든 나라에선 해군이 배를 만들었지만, 네덜란드에선 군함은 해군, 무역선은 민간이 각각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혁신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 배를 가지고 네덜란드는 한 단계 더 성장해 ‘세계 무역의 지배자’ 자리에 올랐다.

그 지위는 잉글랜드에 넘어갔다. 잉글랜드는 식민지가 많아 거기서 담배나 설탕 같은 작물을 다량 재배해 시장 자체를 흔들 힘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토지제도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토지는 저당 잡혀 돈을 빌리는 도구가 됐고, 당시 인기품목인 터키산 커피를 수입할 때도 이용됐다. 이 커피를 파는 커피하우스들이 번창하면서 그곳에서 갖가지 정보를 담은 신문을 인쇄했고, 뱃사람들은 다양한 거래를 했다. 여기에서 신용장과 자금을 공급해줄 은행, 그리고 위험한 장거리 항해로 인한 손실을 나누는 보험이 나왔다.

이쯤 되면, 과학사라기보다 과학을 바탕으로 한 문명사 탐색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싶다. 지은이는 영국의 방송 프로듀서이자, 과학사학자다. 영국 BBC방송이 1978년부터 10부작으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를 옮긴 책이어서 그런지 비주얼이 고급스럽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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