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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치관계법 개정, 돈 통로는 풀되 투명성은 높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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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치관계법을 고치기 위한 정치개혁특위가 곧 활동을 시작한다. 사실상 특위 구성을 마쳤으며, 4월 임시국회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지구당 부활 등 핵심 이슈에 대한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 정치풍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관계법 개정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정치발전을 위한 분명한 원칙과 방향이다.

현행 정치관계법(정치자금법·선거법·정당법)은 2004년 만들어진 세칭 ‘오세훈법’이 그 모태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 개정작업을 주도해 붙은 이름이다. 오세훈법은 개혁입법으로 환영받았다. 하지만 이미 당시부터 비현실적이란 우려가 제기됐었다. 당시는 한나라당 대선자금과 관련해 ‘차떼기’란 불법자금 비난 여론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선명성 경쟁에 몰두했던 시점이다. 그래서 정치관계법이 너무 이상적인 방향으로 흘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행법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정치자금의 통로를 너무 좁혀 놓았다는 점이다. 문제는 정치자금 자체가 아니라 불법 정치자금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자금은 불가피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비용이다. 따라서 정상적 정치활동을 위한 돈은 필요하다. 대신 불법을 막기 위해 자금 흐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강조돼온 핵심 조항은 정치자금 조달 창구의 다원화다. 현행법은 법인·단체의 기부행위를 금지했고, 중앙당과 시·도당 후원회를 폐지해 당 차원의 모금을 막았다. 결국 개인이 개별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내는 창구만 남긴 셈이다. 그나마 개인 기부한도도 대폭 줄였다. 다수가 소액을 기부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다. 그래서 편법이 등장했다. 기업들이 임직원 이름을 빌려 정치자금을 쪼개 후원하는 방식이다. 더 큰 문제는 불법·음성 정치자금의 만연이다. 최근 검찰이 수사 중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혐의를 보면, 현행법 통과 직후인 2005년 불법 자금이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고위원 경선에 나섰는데, 현역도 아니고 당직도 없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자금을 조성할 길이 막막했을 것이다. 물론 법을 지키지 않은 정치인이 잘못이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 많은 정치인을 범법자로 만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지구당 역시 마찬가지다. ‘돈 먹는 하마’라는 오명 탓에 지구당은 폐지됐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유권자들과 만나는 창구인 지구당, 즉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인 지구당의 존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편법으로 등장한 것이 후원회사무실과 연락사무소다. 사실상 지구당이다. 문제는 지구당이 불법 정치자금의 소비처가 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장치다.

오세훈법 시행 5년의 경험에 따라 비현실적인 부분의 개정은 필요하다. 돈의 통로는 풀되 투명성은 강화해야 한다. 특위는 2004년 이 법의 반부패 정신을 지지했던 민심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나친 것은 고치되, 돈 정치가 부활할 수 있는 소지를 철저히 차단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