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현대미술전-전환의 공간'…미술사조 변화의 의미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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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전시는 작품을 나열해서 보여주는 밋밋한 작업만은 아니다.

작품에 작가의 땀이 배어 있다면 전시에는 큐레이터의 고뇌의 흔적이 담겨 있다.

전시를 큐레이터의 '작품' 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신작이 아니라 과거에 컬렉션한 작품을 보여주는 소장품전은 특히 그렇다.

같은 작품으로도 큐레이터의 시각에 따라 완전히 다른 전시를 만들수 있다.

'이런 맥락에 이런 작품이 놓일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소장품전의 매력이다.

호암갤러리에서 12월 28일까지 계속되는 '호암미술관 소장 현대미술전' 은 '전환' 을 키워드로 선택했다.

02 - 771 - 2381. 지난 14년동안 모아온 외국 현대미술 작품을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이번 전시는 '전환의 공간' 라는 전시 제목이 말해주듯 현대미술사의 전환, 즉 모더니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으로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꾸며졌다.

전후 현대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현대미술이 변화의 순간마다 맞닥뜨렸던 새로운 개념과 형식을 남들보다 앞서서 보여주었던 작가 29명의 작품 36점이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격정적 감정이 캔버스에 그대로 드러나는 액션 페인팅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미니멀리즘, 반도체를 이용한 테크놀로지 아트등 다양한 사조의 평면과 입체작품이 함께 등장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즉흥적인 선묘에서 추상표현주의를 예고했던 아쉴 고르키의 작품으로 전시는 시작한다.

물감의 질료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윌렘 드 쿠닝과 이와는 반대로 화면에서 모든 두께를 거둬낸 색면추상 작가 마크 로스코가 이어진다.

이 전시에는 무엇보다 로버트 라이먼과 도널드 저드.프랭크 스텔라.칼 앙드레.댄 플래빈등 비례를 정확히 맞춘 기하학적인 형태의 미니멀리즘 작품이 많이 보인다.

캔버스 위에는 아무런 형태도 없이 하얗게 칠해놓고 정작 틀은 밖으로 보이게 설치해놓은 라이먼의 작품은 '회화의 종말' 을 고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 이처럼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지각 공간의 확장을 가져온 장르로서 포스트 모더니즘을 시작을 알린 맥락에서 선택됐다.

이외에 현대미술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타라 할 수 있는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은 대중매체를 미술에 끌어들인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일상의 삶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현대미술의 방향설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요셉 보이스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진보라는 사고의 틀을 보여주는 전시 전반부의 모더니즘 계열 작품들과 현대인의 삶 자체에 관심을 기울였던 포스트 모더니즘 계열 작품간의 차별성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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