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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시인 이시영 시집 '조용한 푸른하늘' …절제의 미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잘 익은 대추 한 알이 아침 서리에 뽀얗게 빛나니/부신 하늘을 나는 철새들도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일직선으로 난다”

중견시인 이시영씨 (48)가 시집 '조용한 푸른 하늘' 을 펴냈다 (솔출판사간)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씨는 '만월' '바람 속으로' '무늬' '사이' 등의 시집을 펴내며 절제된 서정적 언어로 예리하게 왜곡된 현실과 세상의 뜻을 담아오고 있다.

그의 7번째 시집인 '조용한 푸른 하늘' 에는 위 시 '비상' 전문에서와 같이 3~4행의 짧은 시들이 금강석 같이 빛나고 있다.

그러면서 한없이 주절거려 느슨해진 시에 식상한 독자들에게 여백의 울림으로 시의 참맛을 돌려주고 있다.

“그렇잖아도 말 많아 혼탁한 세상 시인이라도 말을 아껴야하지 않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 앞으로 있어야할 좋은 세상에 대하여 당위적으로 읊는 것도 좋지만 이제 시를 예술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인간과 우주의 심연을 건드리는 서정적 사유에 의한 짧은 시어와 행간의 울림으로써 더 깊고 많은 뜻을 전했으면 합니다.”

언어와 감정을 가능한 절제하면서 독자들에게 좀 더 큰 감동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여직 시의 현실 대응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듯 하다.

“나는 용산성당 그 푸르른 나무둥치숲이 좋다/한 그루는 찬미 예수를 구경하기 위해/창문 쪽으로 파르라한 머리를 잔뜩 숙이고 있고/한 그루는 비탈에 서서 꼿꼿이/하늘을 향해 찌를 듯이 서 있고/한 그루는 인간을 향해 납짝 엎드려 온몸으로 환히 웃고 있는, /나는 용산성당 그 푸르른 나무숲이 좋다.”

이번에 실린 시집에서는 비교적 긴 시에 속하는 '아름다운 일치' 전문이다.

'찬미 예수' 도 구경하고 '인간 세상' 도 기웃거리려는 시인의 다정다감한 '욕심' 이 시를 7행까지 이끌고 있다.

아직 버릴수 없는 현실에 대한 시인의 '의무감' 은 이번 시집에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장시 몇편과 해학에 의한 풍자로도 나아가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곳을 기웃거리지 않는 '비탈에 서서 꼿꼿이 하늘을 향해 찌를듯이 서 있는' 나무의 '즉물적 자세' 의 시들이 이 시집을 빛내고 있다.

“이 고요 속에 어디서 붕어 뛰는 소리/붕어의 아가미가 캬 하고 먹빛을 토하는 소리/넓고 넓은 호숫가에 먼동 트는 소리” 시 '새벽' 전문이다.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붕어 뛰는 소리로 잡고 있다.

어둠은 어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

여명의 조금의 빛이 어둠의 먹빛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을 '붕어의 아가미가 캬하고 먹빛을 토하는 소리' 로 잡아내고 있다.

그 '캬' 소리가 깊은 울림을 주며 우주의 뜻을 여울지게 한다.

“내 마음속의 적요 섬 하나/물새들이 다가와 뜨거운 알을 낳고 가고/갓 깬 새끼 새들이 옆구리에서 노오란 부리를 들어/처음 햇살과 입맞추는 곳//내 마음속의 적요 섬 하나/흐리고 바람 부는 날이면/수평선 끝에 아득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잘 짜여진 전통적 서정시인 '적요 섬' 전문을 통해 이씨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시세계는 '적요 (寂寥)' 임을 알 수 있다.

적요, 즉 모든 습득된 지식 다 버리고 자신이나 우주와 일대일로 만나는 고요의 시간이야말로 세상이 처음 열리는 순간이고 첫 햇살과 입맞추는 순간이며 시가 본디 모습으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 적요의 순간의 포착을 위해 이씨는 언어와 감정을 절제하며 위에서 본 '비상' '새벽' 등의 짧은 절창들로 이 가을 한국시의 한 결실을 맺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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