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작으나 효율적인 정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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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작은 정부가 하나의 경제원리로 받아들여진지 오래 됐으나 국내총생산 (GDP)에서 차지하는 정부의 비중은 선.후진국을 가릴 것 없이 모든 나라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규제완화와 시장개방 등의 경제자유화 정책을 추진해 시장의 기능이 확대되면 자연히 정부의 역할과 이에 수반하는 지출도 감소할 것이며 공공부문의 생산성도 개선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기대였으나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바로 민주주의의 속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모든 사람이 작은 정부의 필요성을 주창하다가도 자기들의 이해와 직결되면 서슴지 않고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고 정치인들은 이러한 요구를 늘 수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민간부문에 맡겨도 될 여러 공공서비스를 계속해서 정부가 생산.공급하려는 타성과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재정의 팽창을 부추기고 있다.

결국 작은 정부는 정치논리와 약자를 도와야 하며 시장실패 (市場失敗) 를 보완해야 한다는 사회정의적 논리에 계속 밀리고 있다.

정부지출 대 GDP 비중이 거의 50%에 육박하고 있는 유럽국가나 33%의 미국, 그리고 36%의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정부비중은 상당히 낮은 수준에 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GDP의 20%에 불과하던 일반정부의 세출이 이제는 26%에 달하고 있어 재정의 팽창을 경계해야 할 단계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정부운영의 효율화를 위한 정부기능과 조직의 개편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 어떠한 개편부터 서둘러야 하는가.

첫째, 정부의 비중을 현수준에 묶어 놓을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만일 향후 3~5년동안 잠재국내총생산 (명목) 의 연평균 증가율이 1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면 정부지출의 증가도 이 상한선을 넘지 않는 관행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재정의 경기조절 기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므로 연평균 증가율을 기준으로 해 상하 양방 1~2%의 범위내에서 정부지출 규모를 결정한 후 항목별 지출을 조절하는 등 재정을 좀더 신축적으로 운영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의 세출항목을 면밀히 검토해 이제는 민간기업도 생산.공급할 수 있는 정부서비스는 모두 민간부문으로 이전해야 한다.

정부의 각종 경제개발사업은 지난 10년동안 8%포인트나 증가해 일반정부 총세출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중 많은 부분은 적정한 유인을 부여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민간사업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문화.보건 및 환경보호 등 사회개발을 위한 정부투자도 정보.통신.생산 및 계산기술의 혁신에 따라 기본적인 서비스 몇 부문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민간투자로 대체될 수 있음이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사회간접자본 확충.자원보존.기술개발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정부의 촉매.매개기능을 강화해 이 부문에 대한 민간투자를 좀더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작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마도 절대빈곤 인구를 포함하는 취약계층의 보호에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들 소외계층의 지원을 위한 사회보장적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시장의 자율화와 개방으로 모든 산업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용과 투자의 조정이 본격화하면 직장을 잃게 되는 근로자, 사업에 실패하는 중소기업자와 영세상공인이 속출 (續出) 할 것이다.

아무리 구조조정에 따른 불가피한 진통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이들 취약계층을 모른체 외면한다면 개방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계층의 조직적인 반발과 저항이 경제개혁 그 자체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결국 근로자 재훈련.재교육.직업안정.실업보험 및 보상, 그리고 개방과 연관된 구조조정 지원 등 사회적인 안정을 위한 지출을 늘려가야 한다.

그리고 그 재원은 경제개발과 기타 사회개발사업 지출을 줄여 조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보장적인 지출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우리도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겪고 있는 병폐를 답습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 부문의 지출에도 상한선을 그어야 하며, 그 선은 경험적으로 보아 GDP의 2~3%를 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박영철 <고려대 경제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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