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아닌 교복, 대학가에 '스쿨 룩'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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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베이징 (北京)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의 폭풍을 일으킨다.

' 나비의 작은 움직임에서 태풍을 짐작하기는 실로 어려울 터. 바로 카오스 (혼돈) 이론은 변화무쌍한 자연계에서 어떤 법칙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요즘 대학가의 패션에도 이 이론은 적용된다.

학교 마크가 부착된 옷.가방을 착용하는 '스쿨 룩' 과 캠퍼스를 가득 메운 '이스트팩' '잔스포츠' 가방 열풍, 그리고 '키치' 와 '바로크' 를 넘나드는 장식물의 범람은 어떤 이론가의 분석도 무색케 한다. 어디서 시작돼, 왜 이 시대를 풍미하며, 어떻게 흘러갈지…. 일련의 혼돈은 스쿨 룩에서 출발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신기하게도' 학교의 이름이 굵직하게 씌어진 옷을 입고 배낭을 멘채 거리를 활보한다.

예전에도 '과 (科) 티' 니 '학교 가방' 이니 하는 것들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외출복 반열에 올려놓고 맵시를 내진 않았다.

전문 메이커도 생겼다.

95년초 서울 경희대 앞에 스쿨 룩 전문점을 차린 ㈜굿맨비즈니스그룹이 대표적이다.

이후 연대.한양대등 11개 대학으로 영역을 넓혔고 동아대.대전대.대경전문대등 지방으로도 계속 진출하고 있다.

매출액도 물론 상승세다.

숙명여대 고지운 (국사학과 1년) 양의 얘기. “대부분 학생이 학교 티셔츠와 가방을 하나씩은 갖고 있습니다.

누가 사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 학교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일까. “애교심과는 별 상관 없어요. 그냥 이런 옷은 코디네이션의 어려움이 자연스레 해소되니까 즐겨 입는거죠. ” 연세대 이경은 (인문학부 2년) 양은 스쿨 룩 특유의 멋이 인기의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유명메이커 제품은 가격이 너무 비싸고, 그렇다고 보세옷이나 싸구려를 사긴 자존심 상하니까, 1만~2만원 안팎의 이런 옷들이 훌륭한 대안이 됩니다.

학교 마크 때문에 입는다는 명분이 서는 거죠. 자부심은 부차적인 것쯤 될까요. ” 대학 당국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UI (University Identity:대학 이미지 단일화) 작업에서 단초를 찾고 있다.

“이런 유행은 학교가 주도한 것입니다.

대외 홍보를 위해 세련된 디자인의 상품을 만든 것에서 비롯된 거죠. ” 경희대 김동선 사무국장의 견해다.

갖가지 분석의 와중에 몰아닥친 외국가방의 거센 물결. PC통신에 뜨거운 찬반논쟁을 몰고 온 '이스트팩' 과 '잔스포츠' 가방 말이다.

“똑같은 미제가방을 멘 사람끼리 마주쳐 서로 서먹해하던 것은 잠깐이었습니다.

금세 일상이 되고 말았거든요. ” 홍익대 국문학과 2년 김묘신양의 전언이다.

반대론자들의 “왜 미국 것만 메고 다니냐” 는 애국심 섞인 비난은 “편하면 그만이지 외국제품이란 게 무슨 상관이냐” 는 실리파의 냉소에 맥이 풀린다.

얼핏 상호 충돌작용을 일으킬 것 같던 스쿨 룩과 이스트팩의 만남은 뜻밖에 시너지효과로 이어졌다.

굿맨비즈니스그룹 곽병준 기획실장의 얘기 - “스쿨 룩 제품 중 의외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게 가방입니다.

단순한 디자인의 외제가방이 선풍을 일으키자 모양은 비슷하면서 값이 절반 가량인 (약 2만원) 학교가방의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이젠 '학교가방 하나에 미제가방 하나' 가 유행처럼 됐다.

엇비슷한 옷에 모두 같은 가방. 새로운 집단화.획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

과연 과거회귀의 조짐 같은 것일까. “천만에요. 도서관 같은 곳에 가방을 섞어놔 보세요. 모두 자기 것을 금방 찾습니다.”

성균관대 서윤상 (경제학부 2년) 군의 말이다.

바로 주렁주렁 달린 액세서리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옷에도 가방에도 자기표현의 장식물이 달려 있기 일쑤다.

열쇠고리.인형.배지 등등. 스쿨 룩과 이스트팩 선풍 가운데서도 무수한 개성을 창출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판에 박힌 표현을 빌자면 몰개성 속의 개성. 다시 혼돈이다.

결국 근원의 날갯짓 찾기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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