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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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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올림픽 때면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게양될 때 가슴에 손을 얹은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TV로 보곤 했다. ‘감동과 기쁨으로 벅찬 마음에 눈물이 날 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가끔은 ‘정말 저렇게 눈물이 날까?’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귀환행사가 끝날 무렵 태극기가 러시아, 미국 국기와 함께 나란히 걸려 있는 우주인 훈련소의 강당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와락 눈물이 났다. 수많은 카메라와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눈과 코가 빨갛게 되도록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우주에서 파란 지구를 바라보면서 생각했었다. ‘고작 400km 정도 벗어났을 뿐인데, 지구에서는 당연했던 호흡 하나에 이렇게 엄청난 비용과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니……’. 엄청난 비용과 대단한 기술로 만들어진 우주선에서 3명의 우주인이 생존 가능한 시간은 고작 2~3일이고, 그 비용의 유지와 보완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우주정거장이 수용할 수 있는 우주인은 10명 안팎이다.

결국 수십 억 인구가 몇 천년 이상 살아온 지구는 정말 완벽한 우주선인 셈이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그런 완벽한 우주선인 지구에 공짜로 탑승하게 된다. 그것도 전쟁이 한창인 곳이 아닌,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들로 가득한 나라가 아닌, 이곳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결코 작은 축복이 아니다.

우주에서 실험하는 동안 나는 결코 작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을 한껏 뽐낼 수 있었다. 40년 가까이 우주에서 실험을 해온 나라인 미국이나 러시아의 경우도 실험장비가 꿈쩍하지 않아 곤란한 적이 있었다는데, 우리의 실험장비들은 놀랍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제대로 작동해 주었다.

우주실험을 위해 밤낮없이 최선을 다해준 연구진 덕분이다. 우주에 다녀와본 사람 단 한 명도 없이 이런 실험장비를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러시아 담당자들도 극찬을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 역시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귀환 후 독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지만, 먹고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실험을 위해 날아다녔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주인 훈련을 받으러 갈 땐 ‘우리가 직접 만든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바람과 함께 러시아의 우주기술 앞에서 한없이 작은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훈련을 받고, 비행을 준비하는 1년 동안 대한민국은 결코 그렇지 않음을 느꼈다.

대한민국 우주인 1명이 우주에 가기 위해 타야 하는 우주선을 만든 나라는 러시아다. 그러나 수많은 러시아인이 직장에 가기 위해 타는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 갑작스러운 상황을 알리고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과 이야기하기 위해 꺼내든 휴대전화를 만드는 나라, 그들이 살고 있는 높다란 아파트와 호텔을 만드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런 대한민국 사람인 것이 한 밑천이니,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야 될 것 같았다.

이소연 우주인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