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충격] "자체 협상팀 과신해 신고 미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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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호 가나무역 사장이 23일 말을 바꿨다. 김선일씨는 17일이 아니라 5월 31일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경호원 1명과 팔루자 근처의 리지웨이 미군기지로 갔다가 연락이 두절됐으며 그가 무장세력에 억류 중이라는 사실은 6월 10일께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선일씨와의 연락이 두절된 뒤 어떻게 조치했나.

"통신 사정이 좋지 않아 6월 2일께 팔루자 기지에 상주하는 한국인 우리 직원과 통화할 수 있었고 김씨가 5월 31일 기지를 떠났다는 걸 확인했다. 출장예정지인 모술에 바로 갔을 가능성도 있었다. 실종과 교통사고 등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탐문을 계속했다."

▶ "어찌 이런 일이…." 한 시민이 23일 서울역에서 김선일씨가 피살됐다는 TV 보도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장문기 기자]

-억류 중이란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았나.

"현지 직원들을 팔루자 지역에 보내 탐문하는 과정에서 6월 10일께 무장세력에 억류된 사실을 알게 됐다. 직원이 팔루자 근처에서 김씨가 타고 갔던 GMC 차량을 보았다고 보고해왔다."

-그 뒤 상황은.

"현지 직원과 이라크 변호사를 보내 두차례 정도 석방교섭을 했고 현지 직원만으로도 여러 차례 협상했다. 협상은 무장세력 간부를 중재자로 해 진행됐다. 납치범 측은 처음엔 김씨 생사 확인조차 거부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사를 알아야 요구조건을 들어줄 것 아니냐'고 하자 생존을 확인해주면서 '한국인이니까 살려주겠다'고 해 석방될 것으로 믿었다. 18일에는 '곧 풀어줄 것'이라는 답변까지 들었다."

-왜 대사관 신고를 미뤘나.

"(10여초간 침묵하다가) 우리 협상팀을 너무 믿었다. 납치범 측이 계속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나도 강심장이 아니다. 그들이 김씨를 당장 죽이겠다고 했다면 왜 신고하지 않았겠나."

-김씨와 동행했던 경호원은 어떻게 됐나.

"36세의 이라크인으로 아직도 생사가 불분명하다. 그의 가족들이 사건 발생 후 경찰이나 당국에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모술에는 왜 갔나.

"쿠웨이트에서 원청회사 직원들이 오기로 돼 있어 김씨 문제도 상의하고 부대이전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할 겸 갔다."

-모술에서 미군 측과 김씨 석방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나.

"미군 측은 만난 사실이 없다. 다만 원청회사 측에 보고한 만큼 당연히 미군 측에도 통보됐을 것으로 보았다."

-왜 진술을 번복했나.

"21일 모술에서 바그다드로 내려와 대사관 관계자를 면담한 뒤 그날 밤 많은 고민 끝에 모든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 나도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직원들을 모아 사실관계를 종합한 뒤 보고서를 만들어 22일 대사관에 가 아는 대로 모든 사실을 진술했다."

-사건 발생 초기에 대사관에 신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결과적으로 보면 그게 나의 불찰이었다. 협상팀을 너무 믿었다. 내 잘못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잃었으니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바그다드=연합]
사진=장문기 기자<chang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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