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 포럼

종로를 거닐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떠난 사람의 뒷모습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옛 거리를 거닐어 보라. 거리를 수놓은 간판들은 당신에게 그 해답을 전해줄 것이다. 당신은 과거를 되돌려받을 수도 있고, 달라진 오늘을 확인받을 수도 있다. 만약 익숙한 간판이 세월의 흐름을 잊은 듯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면 당신은 타임 머신을 타고 행복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낯선 간판이 퉁명스레 당신을 맞는다면 호흡을 가다듬고 새롭게 출발을 다짐할 수 있다. 혹시 그 거리가 당신과 함께 늙어갔다면 당신은 정말 행운아다. 지나간 삶을 파노라마처럼 더듬어 볼 수 있다.

나에게 종로는 그런 거리다. 대입 준비차 기웃거린 학원들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누비던 다방과 생맥주집, 혼수를 고르던 주단가게, 후배들과 어울려 찾은 영화관까지 10대~40대의 삶이 군데군데 담겨 있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불꽃을 튀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엄청난 불균형을 해소하는 묘약이라는 옹호론과 도시의 형성을 제멋대로 재단한 탁상공론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충돌한다. 천문학적 돈이 드는데 무슨 수로 감당하느냐는 쪽과 매년 서울로 유입되는 약 40만명의 인구를 유지하는 비용을 돌려 충당해도 충분하다는 쪽이 서로 계산기를 들이대며 팽팽하게 맞선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서울의 의미를 헤아려보다가 옛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종로를 찾았지만 마음 놓고 걷기조차 힘들었다. 거리에 판을 벌인 행상인, 서명운동을 종용하는 확성기, 울퉁불퉁하게 놓인 보도블록들 때문이다. 종로 2-3-4가는 아예 간판을 기웃거릴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사람을 피해가기에도 인도는 너무 좁았다. 보도폭이 파리의 샹젤리제의 3분의 1도 안 되는 종로는 오히려 그의 약 세배나 되는 가로시설물을 끌어안고 신음하고 있었다. 샹젤리제에 없는 판매대.쓰레기통.분전반.지하철 환기구가 주범들이었다. 3.1운동의 성지 탑골공원 앞도, 조선조 역대 왕의 위패를 모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앞도 성치 않았다. 아니, 더욱 어지러웠다.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들에 둘러싸인 유적지의 밤풍경은 씁쓸하기조차 했다.

2.8㎞의 거리를 거닐며 징검다리를 건너듯 여기저기 추억의 장소를 기웃거려 보았다. 북쪽 종로 대로변에 자리잡은 작은 빌딩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다만 크고 많은 간판들이 가로로, 세로로 빼곡하게 들어차 '날 보란 말이야!'하고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는 것만이 다를 뿐.

학원가도, 보석상도, 주단집도, 셀 수 없이 많은 먹거리점들도 대부분 여전했다. 그러나 어렵사리 찾아낸 그 간판들은 더 이상 행복을 전해주지 않았다. 좀더 크게, 좀더 강하게, 좀더 자극적으로, 좀더…. 경쟁적으로 극성스럽게 바뀐 탓이다.

백제의 하남위례성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의 나이는 2000세도 더 된다. 종로에 800여칸의 점포가 들어선 것이 1412년. 종로 상가의 역사만도 근 600년이다. 이렇게 오랜 도시에서 오늘도 맹렬히 열기를 뿜어내는 거리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서울시는 종로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겠다며 200억원을 들여 종로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인도를 넓히고 가로시설물을 재정비하며 건물의 리모델링과 간판제작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살아 있는 이 역사의 거리에 오래도록 세월의 흐름을 더듬어 볼 수 있는 나이든 간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생활이 우리를 속일 때 언제든 지친 몸을 끌고 와 행복한 과거로 여행할 수 있도록.

홍은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