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결산…아시아 대표 영화제 '정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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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18일 폐막되는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 2년만에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제로 자리잡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올해는 다양한 예술영화를 많이 상영해 매니어들의 갈증을 풀어주었으며 일반관객들도 대체로 국내수입이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아시아영화들과 유럽영화들을 찾아다니며 관람하는 성숙한 면모를 보였다.

또 한국의 컬트감독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김기영의 작품회고전, 대중적이라고 할 수없는 다큐멘터리영화들에도 젊은 관객들이 모여들었고 수묵화 기법의 색다른 중국 애니메이션도 매진을 기록해 다변화한 관객들의 수준을 실감케했다.

가장 인기를 모은 영화는 이란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 와 일본감독 키타노 다케시 (北野武) 의 '하나비' .개막 1주일 전에 이미 예매가 완료됐던 두 작품은 각각 칸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 대상 수상작인데다 거물급 감독들이 직접 부산을 찾아 열기를 더해주었다.

젊은 관객들의 열성적인 호응을 목격한 키아로스타미와 다케시는 1회로 예정되어 있던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자청해 두차례씩 했으며 예고없이 극장을 방문한다든지 즉석팬사인회를 개최하는 등 매우 신나는 반응을 보였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나의 작품이 한국에 이토록 많이 알려져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관객들의 질문 수준도 높다” 고 놀라와했다.

또한 원래 영화제참가 계획이 없었던 '비밀의 화원' 의 시노부 야구치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개막 1주일 전에 매진되자 갑작스레 부산행을 결심,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모은 또다른 주제는 동성애. 왕자웨이 (王家衛) 감독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가 수입불가판정을 받은데 이어 지난달 열릴 예정이던 서울퀴어영화제가 봉쇄된 사실이 동성애소재에 대한 관심을 부추켰다.

이번 영화제에서 동성애를 다룬 작품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외에 대만감독 차이밍량 (蔡明亮) 의 '하류' 와 홍콩감독 슈케이의 '퀴어스토리' , 홍콩감독 관진펑 (關錦鵬) 의 다큐멘터리 '변함없는 나의 홍콩' 등. '하류' 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모른 채 동성애관계를 가지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논쟁을 낳았으며 '퀴어스토리' 는 중국의 게이와 홍콩의 게이 주인공들을 통해 게이의 삶과 사회환경과의 관계를 고찰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의 발굴과 소개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아시아 이외 지역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월드시네마' 부문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아 시선을 끌었다.

멕시코감독 아르투로 립스타인의 '짙은 선홍색' , 노르웨이감독 팔 슬레토네의 '정크 메일' , 러시아감독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의 '어머니와 아들' , 벨기에감독 뤽.장피에르 다르덴 형제의 '약속' , 미국감독 조너단 노시터의 '일요일' 등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한편 올 부산영화제는 세계의 자본과 아시아의 아이디어를 연결해 아시아영화의 산업적인 활로를 모색한다는 취지의 PPP (부산 사전제작협의) 프로그램을 시작, 1백여명의 각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1~13일 사흘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부산 = 이 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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