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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미네르바 오보’ 진상조사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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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및 활동

동아일보사는 2009년 2월 16일 자매지인 ‘신동아’에 기고문(2008년 12월호)을 싣고 인터뷰(2009년 2월호)를 한 K 씨가 미네르바를 사칭했다는 출판국의 보고를 받고, 당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조사위는 신동아의 편집장과 기자들에게 각자 K씨 보도 관련 경위서를 제출받았으며 조사위원들이 이를 토대로 출판국장, 편집장, 기자들에 대한 개별면담을 실시했다. 송문홍 편집장과 K씨 보도 관련 기자들의 동의 아래 당사자들의 e메일 내용도 확인했다. 면담 및 조사 활동과는 별개로 진상조사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했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과 이민웅 한양대 언론정보대 명예교수를 외부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3차례에 걸쳐 조사위 활동 전 과정과 조사 내용 및 결과를 설명하고 보고서에 대해 자문 및 검증을 받았다.

최용원 출판편집인은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2차례 6시간 40분 동안, 송문홍 편집장은 4차례 22시간 반 동안 면담 조사했다.

K 씨는 2차례 만나 7시간 40분 동안 조사했다. K씨는 이후 잠적해 추가 조사를 할 수 없었다. 대북사업가로 알려진 권모 씨에 대해서는 3차례 만나 19시간 10분 동안 조사했다. 네티즌 M, 네티즌 I도 면담 조사에 응했다. 누리꾼 S는 면담 조사를 거부한 대신 조사위원과 e메일 및 인터넷 채팅을 통해 질문에 답했다.

Ⅱ. 2008년 12월호 K 씨 기고문 게재 경위

송문홍 편집장은 2008년 11월 8일경 권씨로부터 “미네르바 기사를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전화로 받았다. 송 편집장은 11월 10일 다시 권씨의 전화를 받고 신동아 12월호에 K 씨와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권씨가 송 편집장에게 보낸 인터넷 채팅록을 분석한 결과, 권씨는 11월 11일 한 인터넷의 ‘경제독서모임’에서 활동하는 네티즌 ‘M’의 주선으로 K 씨와 처음으로 인터넷 채팅을 했다. K씨는 채팅 기록에서 권씨에게 자신을‘늙은이’라고 표현하며 “늙은이가 경고한 대로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저번에 외신에 대한민국 외환위기설 기사제보 외국계 지인에게 늙은이가 터뜨렸습니다” “심적 고통이 몸까지 상하게 합디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라고 언급했다. 권씨는 K 씨에게 신동아와의 인터뷰를 수차례 권했다.

송 편집장은 11월 12일 권씨와의 통화에서 “미네르바가 인터뷰를 꺼린다”는 말을 듣고 13일 K씨의 기고문을 싣기로 결정했다. K씨는 11월 13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기고문을 작성했다. 다음 아고라에 올라 있는 미네르바 박대성씨의 글과 자신의 이전 글을 섞어 M을 통해 14일 신동아 송 편집장의 e메일로 발송했다.

송 편집장은 신동아팀 황일도 기자에게 e메일로 받은 기고문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황 기자는 기고문을 읽어본 뒤 “최소한 필자의 신원을 밝혀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송 편집장은 기고자의 신원 자체를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해 몇 가지 질문을 11월 14일 오후 e메일로 M에게 전달했다. ‘노란 토끼’란 무엇인지, ‘미네르바는 50대 초반, 증권사 근무와 해외체류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보도가 맞는지 등이었다.

M은 같은 날 오후 송 편집장에게 e메일로 답장을 보내 “(원고가) 중구난방이니 일관성 유지 측면에서 손을 좀 봐 달라. 영감님이 담담당당(권 씨의 아고라 필명) 선생님께서 보시고 오케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신다”고 말했다. M은 답장 e메일에서 “노란 토끼는 환투기 세력을 언급한 것이고, 증권사 근무 경력이 있고 해외 체류경험이 있다. 나이는 노코멘트” 라고 답했다.

황 기자는 원고를 정리한 뒤 송 편집장에게 “앞뒤 문체가 확연히 다르고, 내용상 중복되는 대목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원고를 정리한 사람이 여러 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M은 11월 15일 오후 송 편집장에게 e메일을 보내 “영감님께서 ‘꼭 미네르바라고 (기고문에 적시)해야 하느냐, 사이버경제논객 장사꾼 정도로 하면 안 되겠느냐’고 여쭤봤다. 지금도 글을 안 싣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Ⅲ. 2009년 2월호 K 씨 인터뷰 게재 경위

권씨는 신동아 12월호가 발매된 날인 11월 18일 K 씨와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조선하고도 연락하는 중입니다. 그쪽이 쉽게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송편(송 편집장)이 이미 데스크 한 자리를 가지고 이번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동아의 방향이 가장 극악한데… 그걸 이제는 못하는 겁니다. 한 번 정하면 부인 못하는 곳, 그래서 조선을 일단 눌러두고 동아부터 때린 겁니다…. 그리고 이진법 내에도 혼란은 생깁니다”라고 주장했다.

2009년 1월 8일 검찰이 박대성씨가 미네르바라며 박씨를 구속했다. 1월 12일 오전 본사 임원들과 일부 실ㆍ국장들이 참석하는 월요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신동아 미네르바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정밀한 확인 취재를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주문했다. 송 편집장은 월요 간담회에서 제기된 문제점 등을 13일 권씨에게 e메일로 보냈다.

송 편집장은 1월 14일 다시 M에게 e메일을 보내 K씨 인터뷰를 요청해 이날 밤 10시경 지하철 아현역에서 K씨를 만나 인근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다.

송 편집장은 밤 10시께 K씨를 설득해 출판국 회의실로 데리고 갔다. 인터뷰는 이튿날 새벽 3시30분까지 진행됐다. 실명을 밝히라는 요구에 K씨는 망설이다 자신의 이름은 ○○○이며, 한 외국 언론사의 정부 부처 출입기자를 안다고도 말했다.

허만섭 기자는 1월 15일 K씨의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을 통해 정부 부처 출입기자인 Y 씨가 K씨를 아는지 문의했다. 허 기자는 1월 16일 그 지인으로부터 ‘Y 씨가 △△은행에 다니는 ○○○(K씨 실명)을 안다고 하더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조사 과정에서 말했다. 신동아 기자 대부분은 당시 K 씨를 미네르바라고 생각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1월 15일 오후 발행인에게 K씨와의 인터뷰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이에 따라 15일, 16일 주요 간부회의가 열렸다. 대부분 회의 참석자들은 K 씨가 미네르바인지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므로 IP, ID 문제 등에 대한 의혹을 명쾌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Ⅳ. K 씨 자백 경위

1월 28일경 허만섭 기자는 외국 언론사 Y씨를 만나 신동아 2월호 인터뷰 과정에서 촬영한 K씨 사진을 보여주며 아는 사람인지 다시 확인을 시도했다. 그러자 Y씨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송 편집장은 2월 6일 M에게 e메일과 전화로 K 씨와의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K씨가 M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자, 송 편집장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1월 14일 인터뷰 당시 찍은 K씨의 사진과 녹취한 음성 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M에게 말했다.

K씨는 2월 12일 오후 “오늘 저녁에 만나겠다. 담담당당님(권 씨)을 인터뷰 장소로 데리고 오라”고 제안했다. 일부 기자는 “신동아의 취재 공간에 제3자인 권씨를 데리고 가는 게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수용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2월 12일 오후 8시 송 편집장, 권씨, K씨, M 등 4명이 지하철 당산역 인근에서 만났다. 밤 10시께 송 편집장, 송홍근 기자, 한상진 기자와 권씨, K씨 등 모두 5명은 S 호텔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신동아팀은 K 씨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해 K 씨의 성명과 주소, 생년월일 등을 확인했다. 이어 K씨에게 “미네르바가 맞다면 그동안 글을 올린 ID와 패스워드를 밝히라”고 요구했고, K 씨는 “사실 글은 내가 직접 올리지 않아서 ID와 패스워드는 모른다”고 말했다.

2월 13일 새벽 1시 ID 문제 등을 계속 질문하던 한상진 기자가 K씨에게 “당신 미네르바 아니지?”라고 물었고 K 씨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네”라고 답했다.

K 씨는 또 “기고문을 보낸 것도, 인터뷰를 한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하도 심하게 압박이 들어와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됐다. 박대성이 구속됐을 때는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벽 3시 신동아팀은 K 씨에게 “그만 가라”고 했으나 K씨는 가지 않았다. 이에 권씨가 “내가 K 씨랑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고 제안했고 K 씨도 “담담당당 선생이랑 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 두 사람만 남겨놓고 신동아팀은 객실에서 나왔다.

신동아팀은 호텔 1층 로비에서 30여 분간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기자 등이 “객실에 권씨와 K씨 둘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권씨와 K씨는 객실에 함께 있다가 오전 7시에 귀가했다. 조사위는 이 과정에서 권 씨가 객실에서 K 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 측으로부터 확인했다. 황의봉 출판국장은 이날 오전 11시 출근한 송 편집장으로부터 K씨의 자백 사실을 처음 보고받았다.

신동아팀은 진위를 재확인하기 위해 이날 오후 충정로 사옥 인근에서 K씨를 만났다. K씨는 왜 미네르바를 사칭했느냐는 질문에 “독서클럽 멤버 중에 50대 K씨가 있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다. 이름은 모르지만 50대 K씨를 찾을 수 있다. 만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신동아팀은 2월 14일 오후 출판국에서 전체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신동아 기자들은 K씨가 가짜 미네르바라고 최종 결론 냈다. 황 국장은 전화로 최용원 출판편집인에게 K씨 자백을 처음으로 보고했다.

Ⅴ. K씨와 권씨

K씨는 1976년생으로 지방 도시의 S고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K씨는 지방의 모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K씨는 자신이 2000년 H 창투를 시작으로, C 투자증권의 한 지점에서 영업 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가 H 창투를 다녔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권씨는 1963년생으로 대학을 중간에 그만두었다고 했으나 확인 결과 1982년 지방의 K대에 입학해 1989년 졸업했으며, 1989∼1995년 KOTRA 특수사업과에서 근무했다. 송문홍 편집장은 1997년 미국 연수 후 권씨를 처음 만나 10여년간 만남을 지속하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보를 제공받아 왔다. 권씨는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담담당당’이란 필명으로 글을 게재하고 있다.

Ⅵ. 문제점

① 검증의 부재

신동아는 2008년 12월호 K씨의 기고문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필자에 대한 신원과 경력을 확인하지 않았다. 송 편집장은 K씨를 소개한 권씨의 얘기만을 믿고 K씨를 미네르바라고 속단했다. 기고도 K씨에게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네티즌 M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았다. 신동아가 2009년 2월호 K씨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할 때도 신원 검증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터뷰 게재 당시 신동아가 알고 있는 것은 K씨의 이름뿐이었다. 검찰이 박대성씨를 미네르바로 특정한 가장 중요한 근거였던 IP와 ID 문제에 대해서도 신동아팀은 엄밀하게 검증하지 못했다.

② 게이트키핑 시스템 미작동

K씨와 관련한 일련의 보도를 제작 책임자인 송 편집장이 주도하면서 사실상 게이트키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신동아팀 기자들은 기고문의 게재 경위나 인터뷰 성사 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송 편집장의 판단과 결정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③ 윤리적 문제

송 편집장은 M으로부터 K씨의 기고문을 받은 뒤 글의 내용에 관한 몇 가지 추가 질문을 M에게 전달했다. 신동아 2008년 12월호의 ‘편집자주’는 M과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을 토대로 작성했다. 그럼에도 ‘K 씨를 여러 차례 접촉했다’는 모호한 표현을 씀으로써 K씨를 직접 만났거나 전화 인터뷰를 한 듯한 인상을 줘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
신동아팀은 2월 13일 오전 3씨 권씨와 K씨만을 호텔방에 남겨두고 현장을 떠났으나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난 데다 K씨에게 신동아 기고를 수차례 요구한 사람이 권씨였던 만큼 K씨가 귀가할 때까지 신동아팀 관계자가 현장을 지켰어야 했다. 또 송 편집장은 사내 정보를 제3자인 권씨에게 지속적으로 유출했다.

Ⅶ. 개선 대책

동아일보사는 이번 신동아의 미네르바 오보를 계기로 다음과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

① 취재 및 보도 원칙 재정립과 교육 강화: 사실의 검증, 익명 취재원 처리, 인용, 정정, 반론, 표절금지, 사진 및 영상물의 사용 등에 관한 기준을 재정립한다.

② 인터넷 정보 활용 원칙 마련: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사실 확인, 내용 검증, 인용 기준, 정정보도 등에 관한 원칙을 마련해 시행한다.

③ 게이트키핑(단계별 기사 검증) 강화: 기사 관련 정보의 정확성과 기사 가치 판단에 대한 보도ㆍ논평ㆍ편집 간부들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단계별로 충실한 게이트키핑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 취재 내용에 관해 기자들과 데스크 간의 의견 교환을 활성화한다.

④ ‘스탠더드 에디터’ 제도 도입: 스탠더드 에디터는 보도 준칙의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정확한 보도와 취재 윤리를 실천하기 위한 관련 교육을 담당한다.

⑤ 내부 심의 강화: 신문 기사 위주로 이뤄졌던 회사 차원의 내부 심의 기능을 잡지, 인터넷 기사까지 확대한다.

⑥ 독자위원회(가칭) 설립: 동아일보사는 사회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한 독자인권위원회를 2001년부터 운영해 왔다. 이를 ‘독자위원회’로 확대 개편한다. 독자위원회는 독자의 인권보호는 물론 취재 및 보도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원칙을 정확히 준수했는지 심의한다. 독자위원회의 심의 대상에는 신문뿐 아니라 잡지, 온라인 기사까지 포함한다.

진상조사위원회

▶ [관련기사] 동아일보 ‘신동아 미네르바 오보’공식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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