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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봤습니다] 박정현 기자의 대원국제중 1학년 1일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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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선생님이 도움 줘

오전 8시45분, 과학 수업을 받으러 1층 과학실로 이동했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원어민 교사 션 코닉과 김형진 교사가 함께 들어왔다. 수업 주제는 ‘씨앗(seed)’. 코닉이 영어로 말문을 열었다.

“We modeled the seeds that spin like helicopters….(헬리콥터처럼 회전하는 씨앗을 모형화했다.)”

기자는 옆자리에 있던 짝꿍 배진성양에게 “영어인데 알아들어?”라고 물어봤다. 배양은 “모르면 김 선생님이 도와줘요”라며 넌지시 알려줬다. 주변 아이들의 표정을 봤더니 다들 알아듣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과학도 어려운데 영어로 배워야 하나”라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날 수업은 홀씨가 날아가는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코닉은 종이 헬리콥터를 접어 홀씨가 날아가는 원리를 알려줬다. 모둠을 이뤄 앉아 있던 학생들은 머리를 서로 맞대고 가설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모든 학생이 영어 수업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다. 유독 진도가 느린 모둠이 있다. 영어 설명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김 교사가 조용히 다가가 한국말로 다시 설명해 줬다.

영어몰입 수업은 수학 시간에도 계속됐다. 이은영 수학 교사가 99% 영어로 진행했다. 말 중간 중간에 ‘수행평가’ ‘익힘책’ 등의 용어만 한국말이었을 뿐이다. 이 시간에도 학생들은 별로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이 교사가 한 학생에게 이진법 문제를 칠판에 풀어 보게 했다. 술술 문제를 풀던 학생에게 풀이 과정을 설명해 보라고 주문했다. 학생이 영어로 시작하자 학급 친구들이 “그냥 한국말로 해~”라고 했다. 이 교사가 “NO!”라고 짧게 잘랐다. 거침없이 영어로 풀이 과정을 설명한 친구에게 학생들은 “Wow”라고 말했다.

중국어 과목은 중국어 몰입 교육시간이다. 원어민 임가지 교사가 중국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기자는 “중국어 수업까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고작 “조용히 하세요”처럼 잔소리뿐이었다. 입학해 처음 중국어를 배운 친구들도 있을 텐데 알아들을까 싶었다. 앞자리에 박효근군은 “‘감’으로 거의 대부분 알아듣는다”고 했다.


일반 중학교에선 없는 수업

‘국제이해’는 일반 중학교에선 없는 과목이다. 1주일 2시간 원어민 교사에게 수업을 받는다. 교재도 교사가 개발했다. 이날 주제는 ‘리지의 아침’. 리지라는 사람이 매일 맞는 아침 모습을 통해 칫솔·신문·워크맨 등 세계화된 제품의 역사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다. 폴 토마스 비티 교사가 아침과 관련된 제품에 대해 모둠별로 토의하게 했다. 학생들은 앉은 자리에서 자유롭게 책상을 돌려 모둠을 만들었다. 누군가 ‘알람시계’라고 말하자 같은 조에 있던 유아영양이 “Speak in English(영어로 말해)”라고 했다. 학생들은 5분이 넘게 영어로 수다를 겸한 토론을 계속했다.

과학·수학 교과서도 다른 학교와 다르다. 교사들이 직접 만들었다. 올해 처음이어서 그런지 디자인과 편집이 단순했다. ‘김형진 교사표 과학 교과서’를 처음 펼치면 과학책인지 철학책인지 구분이 어렵다. 수업 주제도 ‘Who am I(나는 누구인가)?’이다. 철학으로 과학에 접근한 것이다. 김 교사는 영어와 한국어로 동시에 설명하며 “뇌가 없다면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쥐가 그린 그림을 동영상으로 보여 줬다. 그는 “과연 쥐가 사고를 했다고 할 수 있느냐”라는 물음을 던졌다. 철학적인 질문이었는지 시원스레 대답하는 학생이 없었다. 로봇 등 다른 예시를 들자 아이들이 조금씩 이해하는 눈치였다.

영어 교과서는 교사가 직접 선택한 교재로 수업을 진행했다. 자율학교로 지정돼 교과서 선택이 자유롭다고 했다. 옆에 앉은 학생에게 “일반 중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로 수업하지 않아 엄마가 걱정하지 않더냐”고 물었다. “영어는 확실히 알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좋아하신단다. 영어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반을 옮겨 수업을 받았다. 시험을 봐 수준별 수업을 하는 것이다. 교사마다 각 수준에 맞는 교재와 내용으로 수업을 다르게 진행했다.


성적과 교우관계 고민하는 평범한 중학생들

기자가 학교에 간 날은 정규 수업이 오후 3시50분에 끝났다. 수·금요일엔 일찍 집에 갈 수 있어 좋지 않으냐고 물으니 몇몇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얘기했다. “엄마들이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엔 과외나 학원에 가라고 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학생들은 월·화·목요일엔 방과 후 수업(3시간), 독서(1시간), 자율학습(1시간) 등을 모두 마치고 오후 9시에 하교한다. 하루 세 끼를 학교에서 해결하는 학생이 110명(전체 157명)이나 된다. 이러다 보니 집이 먼 학생은 집에 도착하면 오후 10시가 넘는다고 한다.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한 학생은 길이 막혀 집에 가는 데 2시간이 걸린 적도 있다고 했다. 통학 시간이 학생들에겐 또 하나의 고민거리다. 한 학생은 “수업이 늦게 끝나다 보니 학원 숙제 할 시간이 없어 오전 1~2시까지 잠을 자지 못하는 날도 있다”고 했다.

수업 시간엔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이 없을 만큼 평범한 모습이다. 이예담양은 “중학생이 자율학습을 한다고 하면 다들 ‘안됐다’고 하는데 친구들과 공부할 수 있어 오히려 좋다”고 했다. 송지현양은 “다양한 과목을 영어로 배울 수 있어 일반 중학교보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에게도 역시 가장 큰 고민은 ‘공부’였다. “수준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이다 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얘기다. 한 여학생은 “격주 화요일마다 영어와 수학 시험을 보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같이 지원했다가 떨어진 친구들이 부럽다고 하는데 1학년 때부터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아 솔직히 힘들다”고 털어놓는 학생도 있었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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