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문 닫을 판인데 대출 무소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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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월세도 내야 하고 물건도 들여놔야 하는데 3주째 감감무소식입니다.”

서울 구로시장에서 혼수전문점을 하는 이영례(58·여)씨는 지난달 23일 서울신용보증재단에 2000만원 대출 보증을 신청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하루에 손님이 한두 명밖에 없어 월세가 두 달치 밀렸다. 대출을 받아 월세를 내고 혼수철에 대비해 신상품을 들여놓으려 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을 못 받고 있다. 이씨는 “정부가 돈을 다 풀었다던데 우리는 언제 손에 쥘 수 있는 거냐”며 “돈도 때가 있는 법인데 혼수철 다 지나 빌려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일용직 근로자인 윤모(51·서울 천호동)씨는 지난해 말 일감이 끊기면서 수입이 없어졌다. 동생들 지원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다 여의치 않아 지난달 10일 동네 주민센터를 찾았다. 부양 능력 있는 동생이 동거인으로 돼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윤씨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혜택은 한부모 가정 학비지원금(50만원). 윤씨는 2주 정도면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못 받고 있다.

복지 일선 창구가 여전히 불통이다. 본지는 위기 상황을 맞아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는지를 점검(본지 2월 2일자 1, 6면)한 지 한 달 보름여 만에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때에 비해 개선된 분야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복지 서비스나 자영업자 지원 현장의 모세혈관이 꽉 막혀 돈이 여전히 돌고 있지 않았다. 2월 말 현재 보건복지가족부의 복지예산 13조원 가운데 3조3085억원(25%)이 시·도로 내려갔다. 복지부는 매달 두 차례 예산 조기 집행 점검회의를 한다. 전시 상황처럼 매일 현황표를 작성해 예산 집행을 점검한다. 이 덕분에 시·도 단계에서 돈이 부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지난달처럼 일선 주민센터 병목현상이 여전하다. 지난 한 달 동안 접수된 신빈곤층의 복지 지원 요청은 14만2283건. 이 중 집행된 경우는 절반가량인 7만2304건에 지나지 않는다. 집행률이 1월(69.7%)보다 떨어졌다. 자영업자 대출 창구는 더 심해졌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의 구로지점에는 17일 현재 전산 입력도 못한 자영업자들의 신용보증신청서 400여 장이 수북이 쌓여 있다. 입력할 여력이 없어 1조원이 낮잠 자고 있다.

돈이 가야 할 데로 안 가는 경우도 있다. 1월에 20여 일 만에 동났던 소상공인 정책자금(5000억원)은 더 이상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9000여 명의 자영업자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창구 인력 부족 때문이다. 신빈곤층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데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2만여 명으로 변함이 없다. 다만 실업급여 창구는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병목이 많이 풀렸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정부는 12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8조4000억원을 추경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지금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서비스가 더 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하다.

특별취재팀=김기찬·안혜리·장정훈·강기헌 기자

※앞으로 복지와 경제 분야로 나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예산 집행과 구조조정 실태를 매달 현장 점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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