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선거냐 뜨거운 선거냐 … 4·29 재·보선 바라보는 세 개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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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박희태 불출마 보는 MB의 눈
경제보다 급한 게 뭐 있나

“국회의원을 하는 게 좋을 텐데….”

이명박 대통령이 오래전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를 두고 지나가듯 한 얘기다. 여권 관계자는 17일 “박 대표가 원외란 점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또 다른 인사는 “그게 인정(人情)”이라고 표현했다.

박 대표가 4·29 재·보선 출마를 저울질 중이던 근래까지도 이 대통령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박 대표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여겼다”(수도권 의원)는 전언도 있다.

그러나 적극적이었던 것 같진 않다. 이 대통령과 가까운 한 초선 의원은 “박 대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표의 출마 여부에 대해) 의견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개인이 아닌 여당의 대표다. 대표가 나서면 선거판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먹혀들 가능성도 커진다. 여권의 한 인사는 “여당 대표가 나서면 100% 이겨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 실업 대란이 예고된 상태다. 4월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란 현안도 있다. 청와대로선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여권의 전력이 선거판으로 과도하게 분산되는 게 썩 탐탁지 않은 상황이었다.

실제 박 대표가 불출마를 결심한 뒤 청와대가 “본인의 결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안도하는 기색을 보이는 이유다. 일부 인사는 “순리대로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만류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박 대표의 불출마를 보고 받곤 “알았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고정애 기자

정동영 바라보는 정세균의 눈
그가 뜨면‘MB심판’희석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두 마리의 토끼를 좇고 있다. 4월 국회 재격돌을 앞두고 대여(對與) 전선을 분명히 긋는 일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공천 문제 해법을 찾는 일이다.

정 대표는 정 전 장관 문제로 내홍이 격화되고 있는 17일에도 구로공단의 한 중소기업을 찾았다. 추가경정예산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대응 컨셉트인 ‘서민 추경’을 부각시키기 위해 3월 들어 계속해 온 ‘일자리 행보’다. 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며 “3년간 3조6000억원이면 60만 명을 정규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주재한 원내대책회의에선 “재원이 모두 국민 빚인 추경이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으로 추진되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식 일정을 제외한 대부분 시간은 정 전 장관 문제에 대한 해법 찾기에 할애하고 있다. “분란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러 차례 밝혔던 만큼 그는 전방위 의견 수렴에 신경 쓰고 있다. 지난 주말엔 문희상·정대철·김원기·임채정·박상천 고문 등 당 원로들과 차례로 접촉했다. 정대철 고문은 “대표가 먼저 나서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문제를 푸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라고 주문했고 상당히 수긍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 출마에 반대하는 초·재선 그룹과도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16일 밤엔 최고위원단을 모두 불러 최근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민석 최고위원을 위로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한 참석자는 “정 전 장관이 부적절한 선택을 했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지만 정 대표가 답을 내놓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경주를 바라보는 박근혜의 눈
친박 무소속 지원하기엔 …

‘선거의 여인’이 없는 선거. 4·29 재·보선을 앞둔 요즘 한나라당 내에서 나오는 얘기다. 당 대표 시절 각종 재·보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전승을 거두며 ‘선거의 여인’으로 떠오른 박근혜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표현한 말이다.

4월 재·보선과 관련, 지금까지 박 전 대표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측근인 이정현 의원은 17일 “공석이든 사석이든 박 전 대표는 재·보선에 대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주변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서도 지난해 총선 때처럼 지원유세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박 전 대표가 조용한 행보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경주 재선거다. 경주는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친이’ 정종복 전 의원과 경선 때 박 전 대표를 도운 ‘친박’ 정수성 전 육군 대장의 한판 대결이 예상된다. 정 전 의원의 당 공천이 유력한 가운데 정 전 대장은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지난해 말 정 전 대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힘을 실어준 박 전 대표이긴 하지만 공식 선거전이 시작된 이후로도 무소속 후보를 돕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래서 박 전 대표는 20일 경주에서 열리는 범 박씨 종친모임도 불참키로 했다. 지난 총선 공천에서 낙천한 친박 인사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지원유세 없이 은둔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측근인 한 재선 의원은 “원칙을 중시하는 박 전 대표가 어떤 지역은 지원유세를 하고, 어떤 곳은 안 할 수가 있겠느냐”며 “어차피 재·보선은 당 지도부가 책임지고 치르는 것인 만큼 박 전 대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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