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역사’는 토요일에 이루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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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백악관에서 열리는 가장 중요한 회의 중 하나는 ‘토요 회의’다.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이 토요일마다 주재하는 비공개 회의다. 대통령 집무공간인 웨스트 윙의 루스벨트 룸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요 정책과 메시지, 이벤트 등이 검토되고 결정된다.

오바마는 최근 경제위기와 관련해 화법을 다소 바꾸었다. 얼마 전까진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한동안 어려울 테니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러나 최근엔 “경제의 펀터멘털(기본)은 괜찮은 편이므로 희망이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크리스티나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 등이 15일 TV 인터뷰에서 “펀더멘털이 건전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변화는 ‘토요 회의’에서 잉태된 것이라고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뉴스)가 16일 보도했다. 이 주간지는 “백악관 이너 서클(핵심 참모)은 몇 주 전 경제 관련 메시지를 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대통령이 경제의 심각한 상태를 거론하면서도 궁극적으론 수렁에서 빠져나올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오바마가 최근 발표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 방침, 유능한 교사 우대와 무능한 교사 퇴출 등을 골자로 하는 공교육 개혁 계획도 ‘토요 회의’에서 심도 있게 논의됐다고 한다.

토요일 오전 늦게, 또는 오후 일찍 열리는 이 회의엔 다과나 음료가 제공되지 않는다. 진지한 토론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종종 두 시간 가량 걸리는 회의에선 오바마가 향후 1~2주일 동안 어디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 중장기적으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등을 의논한다. 그리고 결과를 오바마에게 보고한다. 회의엔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 론 클레인 부통령실 비서실장, 멜로디 반즈 국내정책위원장, 로버트 깁스 대변인, 엘렌 모란 커뮤니케이션 국장, 앨리사 마스트로모나코 대통령 일정담당 책임자 등이 참석한다.

액설로드는 대선 때 캠프의 전략을 짰던 사람이다. 오바마의 개혁 구상을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미국진보센터 정책담당 부회장 출신인 흑인 여성 반즈는 오바마의 주요 국내정책 설계에 항상 관여하는 참모다. CNN방송은 최근 “백악관 보좌진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 중 한 명이 반즈”라고 보도했다. 이런 이들이 토요 모임에서 결정하는 걸 오바마는 잘 수용한다고 한다. 오바마가 경제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있는 건 ‘토요 회의’의 건의에 따른 것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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